[세계는 지금] 북핵 25시

전쟁도 아니었고 평화도 아니었다. 도처에서 국지전은 지속되었고, 평화협상도 이어졌다. 2차 대전 이후 45년의 기간을 사람들은 차가운 전쟁(Cold War)이라고 특징지었다. 긴장과 대결의 시대가 지나면 안도가 오게 마련이다. 승자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포효했고, 냉전의 패자는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미국은 자신만만했다. 초대국 소비에트연방을 와해시켰고,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합류하기 위해 과거의 종주국 러시아에 등을 돌리는 모습에 표정을 관리해야 할 정도였다. 1차 북핵 위기는 대국의 자만심과 소국의 자존심 사이에서 잉태되었다. 미국에 동아시아의 소국은 우주에서 보는 하나의 행성이었다. 국제법조차 미치지 않는 우주공간을 관할권으로 둔 미국은 한반도의 절반 정도야 원시시대 이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의 문제도 아니라고 여겼다. 유엔이 필요 없다고 직설하는 인사를 유엔대사로 보내는 미국이었다.

잔인한 국제정치질서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 온 소국은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나름의 생존방식이 있다. 북한도 최후의 수단을 비책으로 삼았다. 운명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강자를 상대할 때 가장 유효한 유일한 카드라고 여긴 것이다. 마오쩌둥이 닉슨과 세계전략을 논한 지 오래되었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아닌 러시아 대통령 복장을 하고 있는 옐친은 러시아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었다.

미국의 가장 유능한 국무장관으로 평가받는 존 포스트 덜레스가 창안한 ‘벼랑 끝 외교술’(Brinkmanship Diplomacy)을 북한이 원용한 셈이다. 1차 북핵위기는 냉전 승리의 환호 속에 조용히 그러나 조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국제 테러리즘의 발호를 방치한 미국의 ‘잃어버린 10년’이 동북아에서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가중시키는 한반도의 ‘잃어버린 10년’으로 되어 버렸다.

21세기 초반에 재개된 북한 핵 문제의 두 번째 라운드는 국제협조주의를 무색하게 한 미국의 신보수주의 강경파들이 이끌었다. 2차 북핵위기 이후에는 북한의 대담한 핵실험이 계속되어 레드라인이란 용어가 한반도 안보사전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뻬따 꼼쁘리’(Fait Accompli, 기정사실)란 프랑스어만 살아있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현 국제정세하에서 만성화되고 있는 북핵 이슈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그 뜨거움이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편치 않게 하고 있다. 작년부터 미국과 북한이 실무협상을 재개하고 역사적인 양자 정상회담까지 하면서 바야흐로 세 번째 라운드로 접어든 셈이다. 미중 간 관계정상화의 해빙외교사를 연상하면서,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정상화로 한반도의 평화의 정원이 가꾸어지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뿐이다.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쓴 ‘25시’에는 비강대국이 느끼는 처절한 시간이 형상화되어 있다. 앙리 베르뇌유가 감독한 그 영화에서 주연 남우 안소니 퀸의 마지막 표정에 잘 나타나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몸짓이었다. 언젠가 북핵 이슈가 사라지고 평화의 수레바퀴가 굴러갈 때쯤이면 협상의 주역으로 참여했던 외교관들은 회고할 것이다. 깜깜한 밤중에 북극성을 찾는 야간 산행의 시절이었다고. 전쟁 속에 평화가 꿈틀대고, 분쟁 속에서 외교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을 되뇌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 너머까지 생각해 본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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