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이어 10월에도 연일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경쟁하듯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이상한 부류로 내몰릴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마치 회색지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개천절 휴일에 아들 잘 둔 덕분에 아내와 함께 생전 처음 개봉 이틀째밖에 되지 않은 수입 영화를 볼 수 있는 횡재를 했다. 개봉 첫날 40만 관객을 넘겼다는 영화 <조커>는 상영 전부터 매스컴을 통해 세뇌하던 대로 대체로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속에서 조커가 어떻게 탄생해 가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어렵지 않게 조커를 배트맨과 비교할 수도 있었다. 정의의 사도 배트맨과 악의 화신 조커가 아니라 기득권자들의 수호자 배트맨과 기득권을 소유하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대변자 조커였다. 그리고 제작자의 의도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을 만큼 양분된 사회 분위기와 그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지도 보였다.
저명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그의 사회학 개론서 「현대사회학」에서 가족과 또래 관계와 학교, 그리고 대중매체를 사회화를 대행하는 대행자로서 꼽고 있다. 특히 이 대행자 중에서 대중매체는 개인이 획득할 수 없는 막대한 종류의 정보를 조달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태도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 책을 저술했던 1989년이 286 컴퓨터를 막 보급하려고 했던 때였음을 고려해 볼 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지식 정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있다. 또한, 이를 활용한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방송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떠돌아다니는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탓에 기든스가 말했던 자발적 결사체들과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조작된 매체의 영향으로 동원한 결사체들이 소집되어 자신들의 신념과 소신대로 사회화를 대행하려고 서로 위협하면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해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구약성서 잠언에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잠14:3)고 하였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잠14:15)고 했으며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14:16)고 하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그래서 미련하여 판단이 흐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유언비어에 유혹되고 분위기에 휩쓸려 방자하게 자만하다가 매를 자청할 것이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을 신중히 하여 악을 견제할 뿐만 아니라 행동과 언어를 절제하면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커가 누구 편이고 배트맨이 누구 편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사람들이 수많은 조커와 배트맨을 만들어 내고, 그들로 하여금 영웅놀이에 빠져들게 하여 사회를 양분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조작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대처하는 슬기와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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