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빈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인구는 76억 명에 이른다. 이 중에 12억의 사람들과 빈곤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는 차상위계층 8억의 인구가 빈곤층이 되어 1천300원 이하의 하루 소득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세계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11위, 교역규모 세계 10위로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져 있다. 이런 현 상황에서 절대 빈곤층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프리카의 절대빈곤을 학문적 견지에서 고찰해 보려는 것이 아니라 가난으로 어렵고 가여운 빈곤 국가들의 삶에 어려움을 인간애적인 면에서 측은한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한 나라의 빈곤 척도를 재는 개념은 절대 빈곤이다. 의식주의 인간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절대 빈곤의 개념으로 본다. 세계 곳곳에는 산업발전의 실패라든지 정치적 혼란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는 빈곤의 상징으로 불릴 만큼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 대륙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절대빈곤층 국민을 돕기 위한 UN의 많은 나라가 GDP의 일정 비율을 원조하며 빈곤을 치유하기에 힘쓰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인류애다.
우리나라도 국제원조에 협력하고 있고 뜻있는 사람들의 아프리카 돕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빈곤도 빈곤이려니와 생활환경의 비위생적인 최악의 상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식수가 부족해서 음용수로는 사용이 불가능할 것 같은 물을 아이들이 공부도 팽개치고 먼 길에서 퍼오는 물로 생활하는 것이나 집안에서 불을 지펴 음식을 장만하는 어설픈 환경의 개선도 시급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빈곤 속에 병들어 가는 아이들의 위생을 보살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아프리카 빈곤은 목불인견이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을 치르면서 빈곤의 아픔을 겪어서 잘 안다. 고아원 아이들이 외국 원조에 의해서 살아왔던 뼈아픈 경험도 했다. 그런 역사적 아픔 속에서 한강의 기적이란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아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빈곤 국가들을 돕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도움을 받던 우리가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가난한 국가들에 알려줌으로써 빈곤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국제원조는 당연한 일이다.
요즈음에는 방송 매체들을 통하여 아프리카 돕기 운동도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정액을 기부하는 회원이 많아졌다. 방송광고에 뜨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실상은 눈물이 나도록 가엽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의 모습이나 해맑은 눈으로 먹을 것을 갈망하듯 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파진다.
우리가 쓰는 단돈 만 원이면 절대 빈곤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기탄없이 회원이 되어주는 휴머니즘은 넓게 퍼져 나가 배고픔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많이 구제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덕선 前 수원고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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