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미군정 자료 모아
컴퓨터 분석·현장 조사 실시
“율곡 정자 등도 연구하고파”
“선교사, 미군정 관계자와 중국, 러시아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찾아내 컴퓨터로 분석, 진서문의 파괴 당시 원형을 확인했습니다.”
조선 영조 때(1775) 교통ㆍ군사 요충지였던 파주 임진강 임진나루의 안쪽 협곡을 가로질려 축조한 성문인 ‘진서문(鎭西門)’의 해체 전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진자료를 70여 년 만에 본지에 공개(본보 8월 26일자 1면)했던 김현국 마을연구가의 말이다.
여태껏 진서문은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단원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가 그린 임진서문으로만 존재가 추정돼 왔다. 파주시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이 진서문 복원을 추진 중이다.
김씨는 진서문 사진 확보를 위해 1850~1900년대 한국의 사진 찾기, 1906~1950년대 종군기자와 조선총독부 사진, 미군정 사진 자료 등을 확보한 뒤 여러 차례에 거쳐 임진나루 등을 방문해 교차 검증하면서 사진의 진품임을 확인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김씨가 공개한 사진(1948~1951)으로 살펴보면 진서문 높이는 약 5.5m, 폭은 4~5m 정도의 아치형으로, 성곽 형태는 사진촬영 당시 임진강 오른쪽 산으로 6~7m까지 남아 있었으나 진서문 위에 세워졌던 목조 누각인 임벽루는 없었다.
그는 진서문 파괴이유와 시기와 관련해서는 “유엔군이 1951년 8월 3일 임진강에 부교를 설치하면서 진서문의 석축 등을 사용한 것으로 사진으로 확인, 진서문 파괴는 1951년 8월 3일 이전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동안 김씨는 진서문 사진 발굴 외에도 고향마을 기록을 남기기 위해 율곡 이이 선생의 생가위치 확인, 임진적벽의 한시발굴, 화석정이 단순 정자가 아닌 율곡 선생의 학문연구소라는 굵직굵직한 논문을 발표, 주목을 받았다.
김현국 씨는 “앞으로 임진나루 진서문~화석정 입구로 이어지는 정자와 주막 등을 연구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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