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흩어졌던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명분이 있는 명절 중 하나가 추석이다. 필자의 할머니께서 불린 쌀을 가지고 방앗간을 다녀오시면 우리 4남매는 그때부터 송편 빚기를 시작했다. 이런 풍경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20년 후 홀로 지내는 가족이 더 많아진다면 100년도 되기 전에 우리 대한민국의 명절 문화는 어떻게 될까?
2009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4명이었다. 그런데 10년도 안 돼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명도 아닌 0.98명이 됐고 계속 줄어들고 있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명 이상은 돼야 하는데 경제협력기구인 OECD 36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0명대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출산율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필자의 걱정을 뒤로한 채 명절인사를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하철 안이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젊은이들은 눈에 띈다. 휴대폰을 뚫어지라 보는 사람, 휴대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낀 사람, 휴대폰의 엄지족과 검지족 등 대부분 휴대폰과 자신의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지하철 문화.
각자의 이유로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저 사람들을 향해 축복의 언어를 하고, 각자 맡긴 일들에 가치(價値)와 의미(意味)를 부여해 주며, 무한한 겸손(謙遜)과 배려(配慮)적 순종(順從) 그리고 인내(忍耐)를 가지고, 극과 극이 아닌 타협하고 존중(尊重)하는 자세로, 대치(對峙)가 아닌 협력(協力)하면 어떨까?
필자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오십여 년을 살아왔으나 지금은 한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필자가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을 한눈으로 보게 됐을 때 이 세상에 큰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나의 불편함만 있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플라톤은 육체의 눈이 쇠퇴하면 정신의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그 대신 다른 능력에 눈 뜨게 된다는 말이다. 필자는 분명 한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경청(敬聽)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더 열린 것 같아 감사(感謝)하다. 육체(肉體)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희망(希望)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방법(方法)이 있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필자는 모처럼의 휴가로 머리에 가을을 입히고 있다. 늘 그 모양만 유지할 수 없고 어느 때는 파격적인 모습을 하고 싶은 가을이다. 온갖 즐거움이 번지는 계절에 우리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한 결과로 100년 후 대한민국이 사라지고 그나마 존재하는 국민은 명예나 돈의 노예가 돼 있다면….
현세(現勢)를 보라.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의 견문발검(見蚊拔劍)처럼 사소한 일에 크게 화를 내며 덤비고, 바늘만 한 것을 몽둥이만하다의 침소봉대(針小棒大)처럼 작은 일을 크게 불려 떠벌리고, 자기 논에 물 대기의 아전인수(我田引水)처럼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처럼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하는 것으로.
진실, 좀 더 기다려보면 진실이 진실 될까?
그렇다. 삶을 들여다보라. 계속 들여다보노라면 사람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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