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펠로우가 누리는 특권

황건
황건

얼마 전 맷 브라운 감독이 제작한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를 봤다. 인도출신 수학자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 1887-1920)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의 스승인 케임브리지 대학의 하디교수(Godfrey Harold Hardy, 1877-1947) 사이의 우정에 관한 내용이다.

수학천재인 인도의 라마누잔은 정식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수학 난제들을 독학으로 풀어 우편으로 영국의 하디교수에게 보냈다. 그 실력을 알아본 하디가 라마누잔을 초청해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하게 됐다. 그가 강의실로 가는 길에 인도 대신 잔디밭을 걸어가자 경비원이 그를 제지했다.

“펠로우만이 잔디를 밟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펠로우라는 직책이 무급조교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하디는 트리니티의 펠로우가든(Fellows Garden) 주변을 뛰어다니는 토끼처럼 보였다’라든가 ‘라마누잔이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가 됐다! 그는 ‘높은 식탁(high table)’에 앉았다. 그가 펠로우가 되어 콤비네이션 룸(펠로우홀)에 처음 입장했을 때 말굽모양으로 배열된 좌석에 앉아있던 선배 펠로우들은 신입회원인 라마누잔을 열렬히 환영했다’ 등이다.

그 대학의 펠로우들은 몇 가지 특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만이 ‘펠로우 가든’이라는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식당에서도 높은 테이블에 앉았고 또 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펠로우 홀에서는 말굽모양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헌장,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통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모토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나라의 가장 오래된 두 대학 중 한 곳에서 특수한 동료에게 특권을 부여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첫째, 이러한 특권은 학문적 업적 또는 공공의 이익에 크게 기여한 학자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일 것이다. 둘째, 분초를 아껴 쓰는 학자들의 시간을 절약을 위해 잔디밭도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각 분야에 뛰어난 연구자들이 식사 중에도 토의함으로써 서로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는 예상에서 나온 배려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 식당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예약석’이 있어 그곳에 교수들이 모여 앉아 자연스럽게 타과에 의뢰하는 환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영국에 왕립외과학술원(Royal Colleges of Surgeons, 1368년 설립)이 있는 것처럼, 미국에는 미국외과학술원(American College of Surgeons, 1912년 설립)이 있다. 외과의사로서 이들 단체의 펠로우가 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우리나라에도 ‘대한민국의학한림원(NAMOK, National Academy of medicine of Korea)”이 2004년 창립됐으며, 2016년 의료법상 법정단체가 됐다. 이곳에 모인 의학관련 학계의 석학들이 우리나라의 의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후학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리라 기대된다.

이 글은 ‘Hwang K. The Privileges Enjoyed by Fellows. J Craniofac Surg. 2019;29:1396’를 편집인의 동의를 얻어 2차출판한 것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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