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어 잘하시네요”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일이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독일인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어려서부터 “독일어 참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고 한다. 이때마다 친구는 “네, 하지만 저는 독일인입니다”라고 항변하듯 대답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네”였다고 한다. 독일에서 잠시 머무르다 돌아가는 나에게 이 말은 칭찬이 될 수 있지만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독일인의 정체성을 가진 친구에게 이 말은 결국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체류 외국인 230만인 시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2세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최초 흑인 혼혈 모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현민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진짜 한국인이 맞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으면서 본인 스스로 어린 시절부터 ‘진짜’ 한국인임을 증명해야 했다. “진짜 한국인이 맞느냐”는 질문 뒤에는 이미 “당신은 한국인이 절대 될 수 없다”라는 편견과 차별을 내포하고 있어서 더욱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 한국인들의 외양은 이미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한국인들의 이들을 향한 시선은 ‘순혈(혈통)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똑같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지만 피부색 때문에 ‘우리(our)와 그들(the others)’로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민자와 그 자녀들에게 “한국어 참 잘하시네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네면서 동시에 한국인임을 스스로 증명하도록 몰아세우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나와 다른 외모나 말투, 행동에 무덤덤함으로써 공적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정부주도로 온정적이고 시혜적인 다문화정책을 펼쳐왔다. 이로 인해 ‘다문화’는 곧 이민자 집단 내지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이들에게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이미 지나친 주목으로 이민자들은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공존하며 교류하는 사회가 다문화사회라면 더 이상 ‘민족’과 ‘인종’으로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피부색이나 외모가 다른 사람들의 유창한 한국어를 요란스럽게 주목하지 않는 ‘예의바른 무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색안경을 낀 과도한 관심은 이미 ‘우리’(한국인)인 이민자들을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으로 오점화하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 사회를 경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영미 道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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