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정치권의 주요 키워드가 ‘국회 정상화’로 돼 있다. 두 달 넘게 국회는 열리지 않고, 매일 국회 안팎에서 각각의 입장에 따른 요구만 거칠게 쏟아내고 있다. 최근 국회를 열기로 합의했다고 하나, 제1야당은 빠진 모양새여서 제대로 국정 현안을 결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에는 다수의 지방분권 관련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대표적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 중 ‘지방자치법’ 개정안만 93건이다. 이중 3월29일 정부가 발의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도 포함돼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하면 1987년 개헌에 따라 1988년 ‘지방자치법’이 전부 개정된 이후 30년 만에 전면 개정되는 것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지난해 3월에 발의한 정부개헌안에서 강조된 자치분권의 정신과 방향성이 그대로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반영되고, 이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통해 구체화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지방자치의 기본법적인 성격의 법률이라 주민 관련 사항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기관 구성 및 권한과 책임의 모든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장 심의를 시작하더라도 상당한 시간 동안 세부 쟁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해 10월26일 발의한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 이양을 위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66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안’(지방이양일괄법)도 국회에 머물러 있다. 이 법안은 19개 부처 소관 66개 법률의 571개 사무를 일괄해 지방으로 이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안이다. 이미 중앙부처에서 이양을 동의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재가를 얻었으나,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던 사무를 모아 하나의 법률안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방이양일괄법’은 10여 년 이상 지방분권의 핵심적 과제로 인식됐음에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20대 국회에서 법률안이 발의되고 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현재 시점에서 상임위별 검토는 종료됐고 운영위원회의 심의만 남아있는 상황이므로, 국회가 정상화되기만 한다면 통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법률안이다.
자치경찰 실시를 위한 ‘경찰법’ 및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역시 국회에 계류돼 있다. 자치경찰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에 앞서 내년에 시범시행을 하려면 관련 법률의 개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개정안은 이미 지난 3월 국회에 발의됐으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검경간 수사권 조정과 정치적인 현안을 다루느라 자치경찰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를 한 적이 없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와 2018년 제7기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은 지방분권과 지방의 발전을 약속했다. 다수의 지방분권 관련 법률 개정안들이 발의됐음에도 국회는 주민자치와 지방분권에 관한 법률안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약속 위반이다. 정쟁 중인 국회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은 극도에 달했고, 국회무용론을 넘어 국회 해체요구까지 나온다. 아마도 여의도의 정치인들은 내년 21대 총선을 대비해 각 정당의 우위를 점하고자 정치적 이슈에서 지지 않으려는 셈법이겠으나, 국민은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단호하게 결단을 내릴 것이다. 진정으로 내년 총선을 의식한다면 국회는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한 산적한 현안에 대해 처리할 시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윤식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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