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남혐·여혐의 혐오표현(Hate Speech) 문제가 심각하다. 익명성 뒤에 숨은 ‘일부’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도를 넘은 지 오래다. 혐오문제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무지와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다. 혐오표현은 특정 민족, 종교, 인종, 성별, 장애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오랜 차별과 폭력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과 다양한 제도적 대응책이 필요하다. 혐오표현은 혐오범죄(Hate Crime)로 이어지고 혐오가 혐오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기 때문에 가상현실의 문제가 실제 현실의 문제가 되지 않도록 선제적 제도도입이 시급한 이유이다.
2017년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이 서울 시내 중학교 3학년 700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한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남성·성 소수자에 대한 비하표현이나 ‘패드립’(패륜적 드립: 부모님이나 조상과 같은 윗사람을 욕하거나 개그 소재로 삼아 놀릴 때 쓰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는 남학생이 61%, 여학생이 17%에 이른다. 남학생들은 ‘세 보이려’고 폭력적 남성성을 답습한다면 여학생들은 이런 또래 문화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러링’으로 반격한다. 한편 10대 간 성적 ‘놀이’와 ‘장난’은 현실의 성범죄와 맞닿아 있다. 남학생들은 자신의 성 권리의식 수준도 낮아서 성폭력에 노출되어도 그것을 ‘문화’로 받아들여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치 않는 성관계(여1.2%, 남3.9%)’, ‘성적 행위를 담은 사진, 동영상에 찍힘(여2.2%, 남5.4%)’, 다른 사람 앞에서 성관계나 자위행위 등 강요(여1.8%, 남9.9%)‘와 같은 피해양상은 여학생보다 더 심각한 실정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전인적 인격형성의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인권 감수성,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적절한 교육적 대응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조사라 하겠다.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남자 조카아이의 학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듣게 되었다. 한 여학생이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신는 사이, 뒤쪽에 있던 한 남학생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남학생은 자신도 신발을 신으려고 여학생의 뒤에 서 있다가 그냥 스친 것이라고 항변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학원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여자애들 가까이 가지 말고 무조건 피하라’는 대책을 제시했다는 말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의 부재를 절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조카에게 “너희가 사는 세상은 남녀가 서로 존중하고 공존해야 하므로 여성의 심리적 상황을 이해하는 수 있어야 하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생기는 경우, 상대 여학생이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너는 차분하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조언해주었다.
현재 교육의 행정주체인 교육부 내에는 사실상 통합적인 성평등 교육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 상호존중과 공존의 건강한 사회로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 나아가 사회구성원 모두의 성찰과 평등의식의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다양성과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공교육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사회적 기제 없이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는 요원하다.
조양민 행동하는 여성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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