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청출어람

5월 어느 날 저녁 어두워질 때쯤 보강을 마치고 나오는데 낯선 제복을 입은 청년이 복도에 서성거려 누군가 보려고 다가갔다.

육군 3사관학교에 입학했다던 후배 교수 사관의 아들이었다. 짧은 기간 함께 관사 생활할 때 고등학교 막 입학하여 자전거 타고 학교 다니던 것을 본 게 엊그제였었는데 각 잡힌 의젓한 모습을 보고 내심 놀라며 “너 청출어람이라는 의미를 아니?”라고 물었다.

‘쪽’이라는 푸른 일년생 식물에서 천연의 푸른색 염료를 얻는 데 그 색깔이 원래 쪽의 푸른색보다 더 푸르다는 의미로 순자(荀子)의 권학(勸學)편 첫머리에 나오는 ‘청취지어람이청어람(靑取之於藍而靑於藍)’을 축약하고 변조한 고사성어이다. 스승보다 제자가 더 낫다는 말이지만 내 질문의 의도는 아버지보다 더 준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자로 남으면 스승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스승을 능가하지 못한 제자는 스승을 욕되게 한다는 말이다. 청출어람과 상통하는 이 말은 경성(警醒)하지 못하고 채신머리없이 나대기만 하는 현실에 내 던져 꽂는 비수이기도 하겠다. 자기만 옳다 하고, 자기만 최고라 여기며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는 모습이 못나기 이를 데 없다. 소신도 아닌 고집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억지는 식상하다 못해 속상하다. 남보다 덜 배운 것도 아니고 남보다 덜 가지지도 않는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갇힌 사람들처럼 막가 처신을 해대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수신(修身)의 배움과 제가(齊家)의 가르침을 준 스승과 어버이를 욕되게 하고 치국(治國)이 아니라 파국(破國)으로 치달으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고 하였다. 형제가 형제를 고발하는(고전 6:6-8) 지나친 자기중심적인 행동에 대한 절제를 요구하는 말이다. 지나침은 아니함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이다. 구약성서 잠언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고 하였다. 배운 대로 행하면 평강이 더해진다는 말씀이다.

스승과 어버이의 기대에 부응하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원한다면 우선 생각과 행동을 자숙(自肅)해야 하겠다.

강종권 구세군 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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