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어진 길 앞에서 새로운 길 만들기 -
미국에서 ‘그랜드마(Grandma)’라는 별칭을 받은 할머니가 있다. 1860년 뉴욕에서 출생해서 보통의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오다가, 76세부터 그림에 전념하여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안나 매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ry Robertson)다. 일본에는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서 99세에 첫 시집을 낸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유명하다.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은 발간 6개월 만에 7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 의외의 도구로 세상을 놀라게 한 할머니가 있다. 82세 고령의 나이에 앱을 개발한 와카이먀 마사코 할머니다. 60세에 처음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며 친숙해지다가 급기야 앱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2017년에는 ‘최고령 앱 개발자’의 자격으로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에도 초청받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결혼하기를 주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성은 결혼을 통해 출산과 육아의 시기에 피하기 어려운 경력단절을 우려하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육아와 살림에 집중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일을 하고 싶지만 결혼 전의 경력은 잘 인정해주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힘든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타고난 직업 적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적성보다 적응이 더 중요한 것이고, 대부분 사람이 적성이 맞아서 자기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다 보니 직업 적성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찾아도 적응하기까지 근성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경력단절을 극복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할머니들도 처음부터 적성보다는 ‘필요’가 시작하게 만들었고, ‘집중’과 ‘적응’이 근성을 발휘하게 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이자 엄마와 아내로 살던 삶에서 나를 다시 독립시키고 온전한 나로 살아나가는 과정이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복지관, 작은 도서관 등의 초·중학생에게 방과 후 부족한 학업을 돕는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배움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복지를 실현하는 이 찾아가는 배움 교실은 ‘도민(道民) 강사’를 모집해 진행해 한편으로는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되는데, 지원 자격은 청년취업자나 대학생 등의 일반인도 모두 포함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현재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자신감 있는 도전이 특히 눈길을 끌고 있다.
나도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강의에 도전하면서, 어떤 전문성을 갖고 강의를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교육의 질을 높인다. 좋은 교육은 상대를 ‘변화’시키며 교육의 목적이 달성된다.
경력 단절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이기 쉽다. 앞서 소개한 ‘열혈 여성’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나이’에 주목하자. 기억력도 집중력도 시력도 체력도 젊은 시절 반의반도 안 되게 떨어진 그때에 시작했다. 마사코 할머니는 60세에 자기 집에 컴퓨터 설치를 혼자 했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컴퓨터를 설치한 게 놀라운 게 아니라, 무려 두 달 동안 설치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근성과 끈기만이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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