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양동 기미 4·7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현재 인구 4천700여 명에 불과한 양평 양동면에서 100년 전 4워7일 3천명이 모인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난 기적 같은 역사를 기념하는 양동 기미 4·7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7일 양동역에서 열렸다.
“민족이여! 이 시기에 총 궐기하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궐기하자! 만일 불참한 사람이 있더라도 이 만세운동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라 인정되나, 일본 경찰에 밀고한 사실이 있는 자는 수하를 막론하고 불통할 것이며 가산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100년 전 전석현과 이종성 등 기미 만세운동 주도자들이 사전에 돌린 격문이다. 이를 본 3천명의 양동면민은 1919년 4월7일 양동면 사무소 광장에 모였다. 전석현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이종성이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했다. 시위대는 양동면 시가지를 돌며 질서정연하게 독립 만세를 불렀다. 당황한 일본 헌병대는 기마 헌병대를 출동시켜 군중에게 총을 난사,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일본 관보는 이날 참여한 시위대를 가리켜 ‘폭민 3천명’이라고 기록했다.
이복재 을미의병정신 현창회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1895년 을미년에 전국 최초의 의병 봉기의 효시가 된 양동의 의병 정신을 이어받은 양동의 4·7 만세운동은 우리 양동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하지만 당시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의사를 중에서 이름을 몰라 아직도 ‘무명씨’로 기록되는 사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기념식을 마친 면민들은 그날의 시위행렬을 재현해 독립운동가와 의병들의 이름이 적힌 만장기외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가지를 행진하며 장관을 연출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정우 군의회 의장, 송요찬 부의장, 전진선 의원, 이혜원 의원을 비롯한 면민 300여 명이 참석해 그날의 정신을 되새겼다.
양평=장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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