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발전해 온 잠업(뽕나무를 재배해 누에를 길러서 명주실를 생산하는 과정)의 역사가 담겨 있는 ‘여주잠사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여주시 교동 299-5번지에 있는 여주 잠사박물관 자리에 아파트가 조성되면서 이전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갈 곳이 없었졌다.
28일 여주시와 잠사박물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분야의 하나인 잠사업(누에를 쳐서 생사를 생산하는 산업) 잠사문화의 전통과 자취를 수집하고 보존하고자 1997년 여주시 가남면 오산리 출신인 박재명(전 농림부 근무) 관장이 여주 잠사박물관을 개관했다.
박 관장은 1960년 서울시립대 잠사과를 졸업하고 전, 농림부에서 45년간 공직생활을 마감한 뒤 고향인 여주로 내려와 우리나라 잠사업과 관련된 유물과 역사기록을 수집해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관을 마련했다. 그는 학생들에게는 우리나라 전통농법인 잠업과 자연과학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생생한 현장학습 체험장으로 박물관을 꾸몄다.
박 관장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중심축이었던 잠업과 잠사문화의 전통과 자취를 수집하고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작업을 진행, 1999년 공직을 퇴임하고 나서 잠사사업의 중심지였던 고향 여주에 잠업관련 유물 역사전시장 26평과 주차장 300평, 박물관 부속건물인 ‘언덕 말’ 음식점과 함께 개관을 했다.
여주는 지리적으로 기후 풍토가 농작물재배에 적합해 벼농사는 물론 1980년대까지 누에고치 생산이 성업을 이뤘으며 잠업은 오랜 고대로부터 의복을 생산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발전해 왔다. 조선시대 자료에도 여주에 뽕나무가 금사면 1만 3천816주, 점동면 1만 130주, 가남면 8천159주 등 당시 양평군 개군면을 포함해 8만 34주에서 누에가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69년 정부에서 농어민소득증대 특별사업이 추진되면서 여주와 이천에 제1호 잠업주산단지로 지정됐다. 예로부터 비단을 얻기 위한 잠업은 국가에서 장려한 정책으로 우리나라 왕이 친경(왕이 직접 밭을 가는 일)을 하고 왕후는 친잠(왕후가 직접 뽕잎을 따고 누에치기를 함)을 했을 정도로 박정희ㆍ전두환ㆍ노무현 등 대통령과 영부인들이 누에치는 작업을 한 흔적이 여주 잠사박물관에 그대로 남아있다.
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주는 연간 500t을 생산해 국책사업인 잠업의 중심지로 지역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었고 잠업은 여주 4천143가구의 주 소득원이었다.
여주자영농고에 잠업과를 신설하는 등 잠업관련 산업이 성업을 누렸다. 그러나 1980년 나일론 원단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쇠퇴기를 걷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값싼 중국산에 밀려 지금은 하동에 잠업연구소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 의료분야에서 누에를 활용한 건강보조 식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동충하초와 뽕 차, 누에 가루, 오디 쨈 등 식용과 누에고치 실크 인공 뼈를 중국 서천성 기형이나 외상 질병 등으로 발생한 뼈의 결손을 보존하는 등 인기를 끌면서 잠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재명 관장은 “여주잠사박물관에는 서양에서 비단을 찾아 중국과 우리나라 등 동남아 지역을 서양인들이 찾아온 실크로드가 형성될 정도로 국가 중요산업이였고 잠사의 중심지인 여주에 박물관을 잘 보존해 미래의 후손들에게 아이콘 사업으로 키울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박물관에는 양잠에 관한 민속품과 자료 1천여 점과 누에고치에서 명주실 뽑기, 명주짜기 등 실을 뽑아 비단이 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실물과 자료로 전시돼 있어 학생들의 학습체험장으로 활용하는데 최고의 장소로 미래 성장동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여주 잠사박물관이 있는 장소는 동부건설에서 공동주택 아파트 건립을 위해 오는 6월께 부지조성공사를 위한 토목공사를 진행한다.
여주=류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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