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27조 제3항 제1문에는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처럼 신속은 재판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지연된 재판은 아무리 정당한 재판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1심 판결을 받은 뒤 불복해 항소하려는데 거리도 멀고 여건도 안 돼 그냥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했다면 그 사람에 대해 국가는 재판청구권이라는 ‘기본권’을 박탈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경기도민들은 이런 고통을 오랫동안 감수해야 했다. 1992년 대전고등법원이 마지막으로 설치된 이후 20년이 넘도록 전국에 고등법원이 신설되지 않아 도민들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을 진행해야 했고, 변호사를 서울에서 새로 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역에 따라 왕복 3~5시간을 길거리에서 허비해야만 했다.
경기도는 1천300만명의 인구와 대한민국 경제의 25%를 담당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명목 때문에 공공연하게 고법설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특히 서울고법은 서울, 경기뿐만 아니라 인천ㆍ강원도까지 관할해 업무 폭주로 늘 마비 직전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돌아갔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2018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서울고법에서 처리한 사건은 총 6천333건, 대전고법은 600건, 대구고법 397건, 부산고법 654건, 광주고법 369건으로 서울고법이 나머지 4개 고법 사건 처리 수(2천20건)의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국회에서 경기도에 고법설치를 해야한다는 법률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수많은 이해관계 때문에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고법설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2010년 ‘경기고법 유치 범도민추진위원회’가 발족 됐고, 2011년 수원시와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가 ‘법원 수원 유치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고법 설립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나는 2012년 6월 수원고법과 수원가정법원 설치를 담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와 함께 경기도와 인천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 전원과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까지 ‘경기고법 설치 촉구’ 서명을 받아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전달하며 고법설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토론회 개최를 통해 법안 통과에 대한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각계각층의 노력 덕분에 2014년 2월 28일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수원고법·고검 설립이 확정됐다. 이 법안에는 수원고법 설치와 함께 가사사건과 소년보호사건을 담당할 수원가정법원을 신설하고 성남, 여주, 평택, 안산, 안양 등 5곳에 가정법원 지원을 설치하는 내용도 담겨 있는데 이로 인해 도민 전체의 법률적 편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마침내 지난 4일 수원고법의 개원식이 열렸다. 경기연구원은 수원고법·고검 설치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가 단기(3년) 1천302억 7천700만 원, 중기(5년) 4천38억 5천900만 원, 장기(10년) 1조 1천203억 8천200만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또 서울 중심의 사법권이 경기도로 분산되면서 도의 위상이 올라가고, 법률서비스 수준이 높아져 기업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수원은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는 유일하게 고법·고검이 있는 도시가 돼 사실상 광역시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이를 계기로 수원시민들이 열망하는 ‘특례시’ 실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길 기대한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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