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평소 친분이 있던 양평의 조각가와 저녁 자리를 함께했다. 닭발에 소주를 곁들이며 동석한 또 다른 작가와 양평 청년작가들의 전시회 방향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자리를 파하고, 술값을 계산할 차례가 되자 어느 틈엔가 그 조각가가 호기롭게 술값을 치렀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아 드디어 내가 계산을 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숙연함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그 날 그 조각가는 타지의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십여 일만에 양평에 돌아온 날이었기에, 그가 치른 술값이 어떤 돈인지 알기 때문이다.
양평은 인구대비 미술인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그러나 양평의 젊은 미술인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작품활동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가다’도 뛰어야 하고, 선배나 은사의 작업을 도우며 일당을 받아야 한다.
양평의 미술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사회의 무관심이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재능기부’다. 작가의 창작 활동에 대해서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재능기부’를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풍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변호사나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에게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다. 같은 예술인이라도 음악가나 공연인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유독 미술인에게 ’작가비’(아티스트 피, Artist Fee)를 지급하는 것에 인색하다.
미술가도 여타의 전문직과 같이 수만 시간의 수련과정을 거친다. 그 때문에 미술인에게 그들의 전문적인 능력에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작가비 제도를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예술인복지법’에 근거해 ‘작가의 창작 활동에 대한 사례비’를 공식적으로 지급할 길이 열린 것이다.
양평이 진정한 미술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미술인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양평이 작가비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하는 지자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양평=장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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