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과 25일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등 여러 대학의 수시 논술전형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그중 24일은 첫눈이 내렸다. 이날의 첫눈은 전에 없는 폭설이었다. 많은 학부모들과 수험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여러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나도 30여 년 전에는 수험생이었고, 4년 전과 7년 전에 아들과 딸이 수험생인 학부모였다. 수험생으로서 또 수험생을 둔 부모로서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 그 심정을 잘 이해한다. 온 세상이 새하얀 아름다운 첫눈이었다. 그런데 대학 수시 논술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그 아름답고 풍성하게 내리는 새하얀 첫눈이 아름다울 리가 없다. 그것은 수험장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일 뿐일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들어가는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대학을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가려고 하고, 또 들어가는가? 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출세를 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대학에 가지 않은 많은 사람 가운데도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많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어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또 대학에 들어간다고 출세가 보장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세속적인 바람과 뜻 외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바라고 뜻하는 것은 대학의 본래 뜻과 연관되는 것은 아닐까?
대학(大學)의 본래 뜻은 ‘큰 배움’이다. 무엇이 ‘큰 배움’인가? 그것은 유가 전통에서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을 제일강령으로 한다. 그런데 ‘밝은 덕’이란 무엇인가?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종교적으로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이다. ‘큰 배움’이란 ‘자신의 신성과 존엄을 밝히는 것’이다. 결국 내 안의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불교적으로는 내 안의 불성을 밝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은 1905년 인제 백담사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었고, 1907년 4월 건봉사(乾鳳寺)에서 수선안거(首先安居)를 성취한 후 10년 하고도 8월이 지나 추운 겨울 12월 3일 눈발이 유난히도 흩날리는 강원도 설악산 산골의 오세암에서 오도를 하여 사나이가 된 것이다. 만해는 오도한 자기 면목을 ‘눈 속의 복숭아꽃’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38세가 되던 1917년 12월 3일 설악산 오세암에서 좌선 중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이 깨달음의 시(悟道頌)를 지었다.
“사나이 가는 곳은 어디나 고향인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나그네의 시름 속에 있었나? 한 마디 소리에 삼천 세계가 부서지니, 눈 속의 복숭아꽃 산산이 흩날리네.” 한용운의 오도송은 한문으로 지어졌다.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일성갈파삼천계(一聲喝破三天界) 설리도화편편비(雪裡桃花片片飛)” 그리고 끝의 세 글자를 만공(滿空, 1871-1946)이 “편편홍(片片紅)”으로 고쳐주었다. 즉, “눈 속의 복숭아 꽃 조각조각 붉더라.” 만공은 만해에게 “날으는 조각은 어느 곳에 떨어졌는고?”라고 물었다. 만해는 “거북털과 토끼 뿔이로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만공이 크게 웃었다고 한다.
복숭아꽃은 4월에 일주일가량 만개하는 봄꽃이다. 만해는 12월 3일 추운 겨울 오세암에서 수행 중 바람에 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그의 의심덩어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흩날리는 눈발 속에 봄에 만개하는 복숭아꽃이 그대로 있음을 알았다. 진리는 어디에나 곳곳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폭설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풍성한 첫눈이다.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올 대학 입시 수험생들이 첫눈 속에서 그들 안의 고귀함과 신성을 발견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대학에서 그것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배우미가 되길 바란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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