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거구획정 법정기한 반드시 지켜져야

지난 10월 31일 손흥민 선수의 소속팀인 토트넘과 맨시티의 EPL 경기 중계를 본 국내 축구팬들은 의아해 했을 것이다. 경기장 잔디에 미식축구리그인 NFL의 앰블럼과 미식축구 경기장에서나 볼 수 있는 생소한 라인과 숫자가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장은 토트넘이 새 구장을 지을 때까지 임시 홈구장으로 쓰는 곳인데, 당일 경기 하루 전날에 NFL 경기가 열렸고, 그 경기 후에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서 이런 해프닝이 발생했다. 많은 토트넘 팬들은 이날 경기장 사진을 보고 ‘끔찍하다’며 신구장 이전을 계속 미루는 구단을 비판했다.

하지만 조만간 최신식 경기장으로 이전이 예정된 토트넘의 팬들은 대한민국 유권자들보다는 사정이 낫다. 흔히들 선거를 축구경기에 비교하면서 선수는 후보자고, 경기장은 선거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매번 선거일을 목전에 두고 선거구가 확정되면서 선수는 있는데 경기장이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제18대 총선은 선거일 전 47일에, 제19대 총선은 선거일 전 44일에, 2016년에 실시된 제20대 총선에서는 선거일 전 42일에서야 선거구가 확정됐다.

이처럼 선거구가 늦게 확정된 이유가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는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고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독립기구로 설치했다. 하지만 독립기구로 출범한 선거구획정위원회도 국회의 구태를 답습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 원인은 첫째 국회가 선거구획정에 필요한 지역선거구수ㆍ획정기준 등을 정해주지 않았고, 둘째 획정위원 9명 중 8명을 국회가 여야 반반씩 선정함에 따라 싸움의 무대를 국회에서 획정위로 옮긴 것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여야동수의 획정위원회 구성방식에 3분의 2 이상의 의결요건이 어우러져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 가장 늦게 선거구가 확정됐고, 이로 말미암은 피해는 고스란히 후보자 검증 기회를 빼앗긴 유권자와 조금이라도 얼굴을 알려야 하는 정치신인들의 몫이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에 이러한 선거구획정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답이 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해서 내년 3월 15일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를 내년 4월 15일까지 확정해야 한다. 법정기한까지는 불과 4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고, 설령 즉시 구성이 돼서 선거구획정 작업을 시작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은 기간이 남았을 뿐이다. 국회는 이제라도 선거구획정에 관한 세부 논의를 시작해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국회가 스스로 정한 선거구획정 법정기한을 준수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일이다.

토트넘은 내년 3월께부터는 새로운 홈구장에서 경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토트넘 팬들은 적어도 향후 100년 이상 경기장 걱정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 유권자도 경기장 걱정을 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조봉기 의왕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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