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시절 살던 기숙사 앞에서 보도블록 공사를 했었다. 처음 공사가 시작된 것을 본 것은 겨울이 끝나가는 3월 초였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은 보도블록 공사는 보도블록을 하나하나 맞추고 오차를 측정하는 절차에 맞춰서 하려는 것인지 여름까지 계속되었다. 공사방식이 신기해서 독일친구에게 물으니 한국은 그렇지 않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이렇듯 절차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인지 독일은 적정절차에 따라 잘못을 걸러내는 사법심사 제도가 잘 발달 되어 있다. 선진 형사사법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는 적정절차모형에 따라 수사는 경찰이 하고, 기소는 검찰이 하도록 분리되어 있으며 이에 발맞춰 자치경찰제 역시 시행되고 있다. 높은 치안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경찰 역시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로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여 수사구조 개혁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권보장을 위해 조사대상자가 조사 중 소지하면서 진술내용을 기재할 수 있는 ‘자기변호 노트’를 도입하였으며, 공정성 제고를 위해 피의자가 요청할 경우 모든 조사과정을 영상 녹화하는 녹화요청권을 신설하였다. 또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체계적인 인사관리와 직무교육으로 88개 분야의 전문수사관을 도입하고 있으며, 수사과정 중 시민통제를 통한 중립성 확보를 하기 위해 우리나라 수사환경에 적합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제주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자치경찰제 역시 발전한 우리나라 경찰의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경찰청 2017년 범죄통계를 보면 발생건수 대비 검거건수 부분에서 자치경찰을 하는 제주청은 82.3점 비슷한 규모의 울산청은 87.3점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매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임용되는 신임경찰들도 형법, 형소법, 경찰학 등을 시험과목으로 공부하여 국민의 인권과 법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치안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경찰은 절차적 정의를 지키는 제도와 높은 내부역량으로 수사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 이제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하는 절차적 순서만 남아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본 보도블록이 시민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 된 것처럼 경찰과 검찰이 보도블록처럼 국민의 길이 되어주어야 한다.
김기태 동두천경찰서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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