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적폐 청산과 제도 개혁을 외쳤건만 남은 것은 갈가리 찢긴 민심과 파탄 난 경제, 개혁 좌초다. 정의와 협치와 소통을 외쳤던 문 대통령의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됐다. 청와대 참모의 탓도 아니고, 내각의 잘못도 아니다. 전략도 틀렸고 사람을 잘못 쓴 대통령의 잘못이다.
얼마 전 대통령의 국회시정 연설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구리아 사무총장 면담시 포용적 성장을 홍보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대통령이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탈 원전을 외치면서 외국에 원전을 팔려고 하니 이율배반이 따로 없다. 자영업자 살린다며 신용카드 수수료 1조4천억원을 민간 카드사에 전가한다. 최저임금 인상 실패의 책임을 돌려막기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함께 잘 살자는 대통령의 구호는 아무런 대책 없는 공허함이요, 현장의 아우성을 무시하는 독선이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이 떠오른다. 차시무성승유성(此時無聲勝有聲)! 차라리 말 없음이 나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갈등과 분열과 반목의 나라다. 해방 직후도 이렇진 않았다. 그때가 좌우익의 이념대결이었다면 지금은 국가 전체가 극한적 대립과 저주와 복수로 날이 새고 진다.
가장 남의 말을 잘 경청할 것 같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남의 말을 듣지 않았던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 대통령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을 넘어 ‘개가 아무리 짖어도 기차는 간다’와 다를 게 없다.
선하게 생긴 문 대통령의 등장에 많은 국민은 ‘이제 세상이 좋아지려나’라는 희망을 걸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에 진정성을 느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말에 동의할 국민은 거의 없다. 그냥 나라가 덜 망가진 채 임기가 가길 바랄 뿐이다.
대통령은 매우 고집스럽고 자신은 나서지 않은 채 참모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도 어렵고 미·중·일·러를 비롯해서 유럽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다. 게다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제도 개혁은 방향도 틀리고, 방법도 잘못됐고, 국민과 야당의 반대로 지지부진이다.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저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 홍사중씨가 쓴 ‘리더와 보스’라는 책에 나온 말이다. 잘 나가던 우리나라가 다시 살기 어려워진 것은 국운이 다해서가 아니라 리더가 잘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다 함께 머리를 맞대도 부족하다. 최고의 실력과 추진력을 가진 인재를 써야 한다. 정의와 이념만을 찾는 정권은 무능하고 위선적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처칠은 가짜 평화로 히틀러와 타협했던 체임벌린 수상을 맹렬히 비난했다. 수상이 된 처칠은 온 국민이 지탄하는 체임벌린을 옹호하면서 자신의 전시 내각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체임벌린의 책임을 묻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과거와 현재의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미래를 잃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하고픈 말이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