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캠페인에서 내가 사는 이유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금방 쓰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종이를 두고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사는 이유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생각해 보던 게 아니라서 좀 고민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사는 이유에는 ‘부모님이 낳아주셔서’, ‘그냥 태어나서’ 이런 말도 있었지만,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이루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등 진짜 꿈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진짜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이든 항상 힘들어하지 말고 힘들어도 내 옆에 있는 친구나 가족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 이 캠페인을 통해 우리 학교 친구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힘들어도 혼자라고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
청소년들 중에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단 한 명이 없을 때 극단적인 생각과 자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하는 것이 힘든 청소년기를 견디어 내고 위기 순간에 보호요인이 된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청소년 자살에서 ‘자기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self)’로 정의했다. 이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청소년 자살이 자아 정체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임상의학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우울증의 영향에 집중하고 있어서 자살을 의료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살이 우울증 치료제의 복용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자살은 결핵이나 암과 같은 치명적 질병이 되는 위험성이 있다. 물론 우울증 치료약이 자살 예방에 있어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살을 의료화하는 경우에 놓치기 쉬운 것은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르케임(Emile Durkeim)의 자살론에서 “불행한 사람이 왜 자살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 대답으로 ‘자살방지지수’에서 찾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고통이나 절망, 가난과 같이 자살을 부추기는 ‘자살촉진지수’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낮은 사회가 있다. 이러한 사회는 사회적 통합과 유대가 강한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구성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사회이다.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친구와 가족 간의 유대와 결속, 연대감이 자살을 예방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인격적으로 인정해주고 애환을 함께 나눌 친구가 옆에서 있으면 불행도 견디기 쉬워진다. 아무리 불행의 막다른 골목에 있을지라도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접하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극심한 고통도 견디기 쉬워진다.
청소년들이 자기로부터의 도피로 나아가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문제에 직면해 나갈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감을 강화하고, 학교와 가정, 사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공감해 줄 단 한 명이 곁에 있기를 도와야 할 것이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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