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사법농단 해결, 사법부 의지만이 유일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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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의지만이 ‘사법농단’ 사건 해결의 유일한 해법이다.”

최근 ‘법블레스유’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듣는 상대방이 법의 축복을 받았다는 뜻으로, 만일 법이 없었다면 진작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깜찍한 경고다. 여기에는 법이 투명하고 엄격하게 집행되는 사회가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근래의 사법부를 지켜보면 법의 축복이 과연 실재하는지 의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사건’이 도통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촉발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을 사찰한 파일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결론 냈지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가조사를 요구했고 지난해 9월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이를 수용했다.

 

올해 1월 추가조사위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사건의 성격은 180도 바뀌게 된다. 법원행정처가 이른바 거점법관들을 통해 판사들의 동향을 사찰했다는 정황뿐만 아니라 상고법원 설치 협조를 대가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도 재판거래의 흥정대상으로 삼고,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를 사찰하는 것도 모자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정보 등의 헌재 기밀을 빼돌렸다고 한다. 이는 최소한의 역사의식도 없이 법 위에 군림한 것으로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명백히 훼손한 것이다.

 

사상초유의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사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계속됐다. 작성자의 동의 없이 임의제출 받은 문건은 재판의 증거로 쓸 수 없다더니, 이제 영장전담 재판부는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누가 봐도 앞뒤가 안 맞는 ‘핑계’이고 ‘어불성설’이다.

 

법원은 지난 9월2일 기준으로 검찰이 청구한 208건의 압수수색영장청구 중 88.9%에 달하는 185건을 기각했다. 통상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율 90%의 정 반대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장전담판사들은 ‘재판 거래는 없다’며 사실상 무죄 선고에 준하는 예단을 드러내기도 하고, 수사의 밀행성을 무시하고 임의 수사 선행을 내세우는 등 마치 영장기각을 염두에 둔 심사의 인상마저 주고 있다.

 

수사대상인 법원이 영장 발부를 결정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한데, 사법부가 스스로를 ‘성역화(聖域化)’하고 ‘치외법권’으로 만들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인한 ‘사법부 독립의 위기’는 그 누구도 아닌 사법부가 자초한 것이다.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본인의 업적으로 삼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동원해 스스로 사법권을 박근혜 정권에 헌납한 ‘사법부 자해사건’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은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다. 사법부가 국민의 사법부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국회 국정조사, 특별재판부 설치, 적폐법관 탄핵 등 응급조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을 친지 오래다. 지난 6월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7.6%에 불과했다.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에 대한 신뢰를 국민이 거두어들이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재판거래 의혹을 불식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개혁은 가능하지 않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바로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인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 독립이며,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해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은 필수다.

 

‘사법농단’ 사건 해결을 위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범죄는 아니다’라는 식의 섣부른 예단은 사법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법부의 ‘의지’만이 ‘사법농단’ 사건의 유일한 해법이다.

 

백혜련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수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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