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넛지 행정’, 시민에게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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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수원시 곳곳 횡단보도 앞에 파라솔(parasol) 형태의 대형 그늘막이 하나둘씩 설치되고 있다. 시민들은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시원한 그늘에서 땀을 식힌다. 짧은 시간이지만 땡볕을 피할 수 있어 이용자 만족도는 무척 높다.

지난해 처음으로 8개소에 그늘막을 설치했는데, “다른 곳에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6월 안에 100개소에 그늘막을 설치할 계획이다. 단지 그늘막을 설치한 것인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비용도 그다지 많이 들지 않고, 한 번 설치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보기도 좋아 도시 미관에도 도움이 된다. 그늘막 주변에는 어떠한 안내문도 없지만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늘로 모여든다. 수원시의 횡단보도 앞 그늘막 설치는 이른바 ‘넛지 행정’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넛지(nudge)’의 사전적 의미는 ‘(특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이다. 행동경제학자인 미국 시카고대 교수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이 공저한 책 「넛지(nudge)」(2009년)가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진 단어다. 리처드 탈러는 넛지 이론으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넛지」를 쓴 두 사람은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을 유도하는 힘을 ‘넛지’라고 정의했다. 금지ㆍ명령이 아닌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것이다. 넛지에는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흔한 말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남자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디어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줄인 게 대표적인 넛지 활용 사례다.

 

행정에도 넛지 이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도 시민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수원시도 ‘넛지 행정’을 펼친 사례가 많다.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도로 양 옆에 심은 가로수는 모양이 여느 가로수와는 다르다. 세로가 긴 직육면체 형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bar) 형태 아이스크림 같다. 어차피 해야 하는 가지치기를 이색적인 모양으로 한 것이다. 수원시의 ‘직육면체 가로수길’은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올림픽공원 내에 조성한 반려견놀이공간(쉼터)과 구도심의 벽화 골목도 넛지 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개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싶어 하지만,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 중에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한 갈등도 있다. 인적이 드문 공원 한편에 울타리를 치고, 반려견 놀이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반려인, 비반려인 모두 만족도가 높아졌다.

 

수원시의 대표적인 구도심인 행궁동과 지동에는 벽화 골목이 있다. 벽화를 그리기 전 담장은 무척 우중충했다. 때가 잔뜩 끼어있었고,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낯뜨거운 낙서로 가득 찬 담장도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후 마을에는 생기가 돌고, 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났다. 쓰레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낙서하는 사람도 없어졌다.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낙서 금지’라는 경고문구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훨씬 큰 효과를 낸 것이다.

 

넛지 행정의 가장 큰 장점은 ‘계도’를 하지 않아도 시민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추가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행정 전반에 넛지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넛지 이론은 그동안 경제 분야에서 주로 활용됐지만, 이제는 행정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넛지 행정이 성과를 거두려면 시민 참여가 필수적이다. 시민이 넛지 행정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행정전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들도 기존에 해왔던 행정을 반복하기보다는 효율적이면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넛지 행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유도시’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수원시가 넛지 행정도 선도하는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한규 수원시 제1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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