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찰의 피해자 보호가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

- 범죄 피해 회복, 경찰의 초기 활동이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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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신변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경찰서에 방문한 그녀는, 상담 내내 표정변화가 없었고 필자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헤어진 남자친구는 지속적인 협박을 하고, 직장과 집으로 찾아오길 수차례…. 그녀는 직장까지 그만 둔 상태였지만 사건접수를 원치 않았다. 보복이 두렵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였다. 범죄피해를 겪은 피해자들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자책감, 가해자에 대한 원망 등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녀 역시 자살시도와 무기력 등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인 필자는 그녀에게 △112긴급신변보호 등록 △스마트워치 제공 등 신변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문상담기관에 심리상담지원을 요청했다. 보름 뒤 삶의 의지를 잃은 듯했던 그녀에게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고, 경찰에 정식으로 형사 사건 처리를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이때부터 가해자 조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자와 가족에게 경찰 임시숙소 사용을 권유하고 가족에 대한 추가 신변보호도 진행하였다. 용기를 얻은 그녀는, 6개월 뒤 법정에서 당당히 가해자의 범행을 증언하며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였다.

 

과거 그녀는 범죄피해로 인해 직장을 잃고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자해까지 하였으나, 지금은 범죄피해자 지원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에 봉사하겠다며 관련분야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봉사활동 중이다.

 

경찰은 범죄 피해자를 가장 먼저 접촉하는 형사사법기관으로서,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피해자를 위한 긴급구조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것이 바로 경찰 단계의 피해자 보호 활동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건초기에 피해자 특성과 상황에 맞는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이 신속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2018년 4월17일 경찰법 및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개정되어, 범죄피해자 보호가 경찰의 기본 임무로 명확히 자리매김하였다.

 

다소 아쉬운 것은 범죄 피해자보호 영역에서 경찰의 역할은 커지는 반면, 법무부가 조성한 1천11억 원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중 경찰에 배정된 기금은 11억9천5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피해자에게 신속한 지원이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기금 집행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경찰은 범죄피해자를 나의 가족처럼 돌보며, 피해자 중심의 경찰활동이 현장에 정착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시의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피해자들이 아픔을 딛고 조속히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변경령 고양경찰서 청문감사관실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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