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4차 산업혁명 시대, 전통산업과 첨단제품

이연희
▲ 이연희
‘전통산업이 4차 산업혁명의 원천’이라는 전문가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의 요지는 기존산업에서 첨단기술을 접목해 세계적 명품이 나왔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우리 산업은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후 경공업, 중공업, 첨단산업으로 발전해왔다. 경제발전과 소득수준에 동반되는 임금의 상승, 기술력 향상과 부가가치 생산 등을 생각해 볼 때,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성공적인 산업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산업을 접고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앞으로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 또한, 그때마다 새로운 제품과 산업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연필은 나무와 연필심으로 구성되는데, 연필심은 흑연과 점토, 물의 배합이다. 1660년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최초로 연필 생산업자가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연필제조사가 250년 전통의 파버 카스텔(Faber Castel)이라는 회사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타자기 시대와 현재의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아래한글, MS워드 등) 시대에도 이 기업은 필기구 제조사로 변함없이 성장하고 있다.

나무, 흑연, 점토, 물의 조합인 연필과 첨단기술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고, 더 나아가 연필보다는 디지털기기 사용이 보편화됐는데도 이 기업이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업의 8대손인 안톤 볼프강 파버 카스텔 CEO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단순히 필기구만 만들지 않고 창조적 활동과 관련된 도구를 개발하여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시대변화에 맞게 충족시키려는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독일 베를린 시(市)정부는 1991년부터 베를린 동남쪽 지역에 아들러스호프(Adlershof)라는 과학단지를 조성 중이다. 이 단지의 관리기관 자료에 의하면 현재 이곳에는 대학·국공립 연구소가 16개, 비즈니스 인큐베이터와 기술센터가 9개, 약 1천여 개의 민간 기업이 모여 있다.

이곳을 첨단과학단지로 개발하게 된 배경이 전통을 중요시하는 독일답다. 독일연방정부와 베를린 시는 통독이후 쇠락한 동베를린의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 묘수가 필요했다. 이들은 동베를린 지역 중 과학기술의 역사를 가진 지역을 찾아 과학단지로 조성하면 관련기업을 유치하고 산업과 인재들이 모여들 것으로 판단했다.

아들러스호프 지역은 20세기 중반까지 독일 항공우주관련 엔지니어링산업과 연구소가 집적되어 있던 곳이다. 독일 최초 동력비행기의 이착륙장이었으며(1909년), 항공시험연구원(1912년), 아들러스호프 과학아카데미(1949년) 등이 있었으며, 현재 독일의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도 이곳의 여성과학자 출신이다. 아들러스호프과학단지에는 당시의 격납고, 공장 등의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엔지니어링산업의 흔적만 남아있던 곳을 연방 및 시정부가 노력하여 첨단산업과 일자리가 넘쳐나는 지역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 지자체,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기업들은 신시장 개척과 신제품 출시에 마음이 바쁘고, 정부와 지자체는 침체된 경기와 일자리 만들기에 노심초사하는 형국이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산업에서 첨단제품을 만들고 과학기술의 역사가 있는 지리적 장점을 찾아 첨단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이연희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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