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환경 개선, 갑을 문제부터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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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에 나가 촛불 들고 서 있던 게 벌써 1년 반 전이다. 1년 반 사이에 많은 게 변했다. 그러나 우리 일상공간에서의 변화는 요원하다. 우리 주변에는 갑질과 또 다른 갑질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경공노총)은 지난 3월 미투운동에 발맞춰 경기도공공기관의 갑질과 성희롱 실태를 조사했다. 놀랍고 슬픈 결과였다. 소속기관, 그리고 더 위의 상급기관 보복이 두려워 조사에 참여조차 못 한 현실이 더 참담한 결과였다.

내가 속한 기관도 그렇다. 도 공무원 출신 고위 간부가 성희롱 문제를 일으켰다. 또 다른 도 출신 간부가 성희롱에 휘말려 자진사퇴한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여기다 공무원 출신들 낙하산을 위해 규정 변경을 요구했다. 뒤늦게나마 인사규정 개정 요구를 연기하고 징계절차를 원칙대로 진행토록 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나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로, 을에겐 어려운 일이 갑에겐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경력 제한 조정은 조직의 위상, 직원들의 육성과 조직의 발전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공무원들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생각을 바꿨다.

갑과 을이 인간을 어떻게 짓밟는지도 확인했다. 상급기관 출신들이 직원들을 어떻게 여기길래 연이어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을까? 우리 기관은 미투운동 이후부터 보직자 대상 성희롱 방지 교육을 진행하는 등 조직문화 개선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공무원 출신 고위직으로부터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직원 한명한명이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며 딸이고 경기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업무지시에 따르고 함부로 다뤄도 되는 노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할 인권을 갖고 있다.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근본적으로는 태도 변화가 우선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는 본래 권력이나 위계관계가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는 수평적 파트너 관계다. 오랫동안 뿌리박힌 잘못된 문화를 한순간에 바꾸기는 어렵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했을지 모른다.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낙하산은 갑질의 전형이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은 세금 낭비요 성실에 대한 모독이다. 불합리한 경영평가제도는 갑질의 근간이다. 관계 당사자가 머릴 맞댈 수 있는 토론의 장도 필요하다. 업무환경이 나은 공공기관에 이 정도다. 민간 파트는 말하기조차 어렵다. 공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갈 길이 멀다. 잘못된 갑을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차기 지사께도 간곡히 부탁드린다. 노동계에 만연한 갑질 문제, 잘못된 갑을관계를 해결해주시기 바란다. 경기도가 달라지면 대한민국이 달라진다.

이기영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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