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허묾과 성장 그리고 통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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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에 독일 교수 한 분을 모시고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강의를 부탁한 적이 있다. 강의 취지는 학생들이 직접 세계 복지의 트렌드를 느껴보라고, 말 그대로 세미나를 해보라는 의도였다. 어느 날인가 통일과 복지의 문제가 주제로 올랐을 때, 대학원생 중에서 남과북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는 물음이 제기됐다. 복지 차원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독일 교수가 대답했다. 

원론적인 대답으로 다음 물음이 나올 자리를 마련하는 수다. 그런데 기대와 다른 대꾸가 나온다. 정작 교류가 원활해져 상호 방문하는 데 문제가 없으면 큰일이 나지 않겠느냐고. 북한에서는 온통 공산주의 교육으로 물들어 일사불란하게 반응할 테니, 결국 여론전에서나 선거에서도 밀리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독일 교수가 대꾸하기를,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무슨 주의니 해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주의는 바로 개인주의다.

그런 식의 대답이었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학원생과 몇몇 뜻을 같이하는 원생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북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뒤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는 이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온 겨레의 생각이나 아니면 적어도 느낌이라도… 뭐라고 딱 꼬집어 이름 붙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변화가 시작되었거나 오리라 기대할 수 있거나 하는 분위기의 변화가 느껴지는 이즈음에 문득 떠오른 기억이다.

 

과연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까? 듣자 하니 남한의 인기 드라마 월화 방영분은 그 주 주말이면 북한에서도 본다고 한다. 휴대폰 500만대 이상에 장마당이며 뭐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심도 없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최근 들어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북한 사정에 대한 정보가 늘면 늘수록 북한에서 적어도 내가 북한을 아는 것보다는 남한 사정을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많겠구나 싶다.

 

지금 분위기처럼 그렇게 성급한 변화가 생기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공부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통일이란 사건을 생각하면 반드시 복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통일이 막 이루어지던 무렵 독일에서 유학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진즉 깊이 공부했어야 했지만, 막상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독일의 경우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복지 분야는 준비가 전혀 없이 이루어지다 보니 어떤 경우 (구)동독에서는 복지 수준이 전보다 떨어지면서 불만과 고통이 따른 경우도 있었다. 통일 전과 후의 동독지역 출산율을 보면 눈에 띄게 줄어드는데, 그것은 변화에 따른 불안도 한몫했겠지만, 복지수준의 하락과 상대적 박탈감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이들도 많았다.

 

앞에서 제자들 가운데 드러난 북한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그동안 우리 사회와 민족을 감싼 알껍데기 같은 것이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알이 깨어져야 할 당위성을 이야기하였다. 기억에 의존하자면, 새가 태어나려면 새로운 세상이 오기 위해, 혹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알이 깨져야만 한다.

알은 곧 보호막이자 방어막이요, 우리 자신의 기존 틀이자 세상이다. 손톱만 깎으려 해도 조심스러운데, 우리 몸과 하나처럼 붙어있는, 아니 우리 정신과 하나처럼 붙어있는 저런 껍데기를 깬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도 가슴 설렌 일일까? 나 자신조차 급변보다 안정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알 안에서 나오려는 새의 껍질 쪼기가 느껴질 땐 밖에서도 함께 쪼아주는 즐탁동기(啄同機)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독일의 통일과 복지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고, 복지 분야에서 통일을 생각하며 살펴야 할 것들을 찾아보기 위해 고민해야 될 것 같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노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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