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재 예방을 위한 작지만 큰 투자

이치복
이치복

1969년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유리창이 깨지고 번호판도 없는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배터리나 타이어 같은 부품을 훔쳐가고 더 이상 훔칠 것이 없어진 뒤에는 자동차를 마구 파괴하는 행동까지 보였다. 이는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총체적 위기는 사소한 문제에서 올 수 있기에 깨진 유리창은 바로 수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쌓아 둔 쓰레기 더미와 부주의하게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한 개비가 소중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대형 화재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는 대형화재는 이러한 자율 관리 소홀과 부주의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 구조적 결함이 더해져 발생하게 된다.

 

건물 하단부에 외벽을 없애고 기둥만 세워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필로티’ 구조의 도시형 생활주택은 지금도 전국에 산재해 있다. 비용이 저렴하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유독가스를 내뿜는 ‘드라이비트’ 공법의 위험성 역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필로티 주차장이 불길에 휩싸이면 마치 건물 아래에서 불을 지피는 꼴이 되며, 이때 건물 외벽 마감재로 사용된 드라이비트는 불길을 빠르게 건물 전체로 퍼뜨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대형 참사로 기억되는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 2017년 제천스포츠센터 화재, 최근 발생한 오산 원룸 화재처럼 필로티 주차장 구조에 드라이비트 외장재를 사용한 건물의 경우에는 화재 발생 시 삽시간에 건물 전체가 화염으로 뒤덮일 위험성이 매우 높다.

 

부주의와 자율 관리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건축 구조와 자재에 따른 화재 피해는 분명히 인재(人災)라 볼 수 있다. 불가항력인 천재지변과는 달리 인재는 작은 관심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 스스로의 예방을 위한 노력과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재 예방을 위한 관심, 내 집과 주변을 스스로 관리하는 안전의식과 그것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값싼 건축자재보다는 좀 더 안전한 불연 외장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 이러한 작은 노력과 투자들이 대형 참사를 막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처럼 국민 모두의 다양한 노력과 투자를 통해 안전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매년 반복되는 대형참사를 막기 위해 예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더 이상 ‘亡牛補牢(망우보뢰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하는 일 없도록 안전의식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치복 

용인소방서 재난예방과장 소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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