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봄이 오는 연강나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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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길을 가다 보면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옥계리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숙박을 할 수 있고,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만든 시골밥상도 맛볼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지나면 헤아릴 수 없는 항아리가 장관인 로하스파크가 보인다.

로하스파크는 콩과 율무가 주산지인 연천군이 전통음식과 문화체험 등을 위해 만들었는데 현재는 숙박시설 리모델링 공사 중에 있다.

 

로하스파크 앞에는 평화누리길이 보이고, 이곳을 통해 평화누리길 순환코스이자 2016년 봄 연천군에서 조성한 ‘연강나룻길’을 걸을 수 있다. 도로에서 오르막길을 10분 남짓 걸으면 사격소리가 들리면서 민통선인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조금 더 걷다 보면 현무암지대를 지나게 되는데 여기는 3억8천만년 전 암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당초에는 현무암이라고 알려졌으나,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퇴적암이 높은 열과 압력으로 성질이 변한 변성암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변성암지대로 명칭을 바꿔야겠다.

 

옥계리는 화전민들이 산을 개간해서 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정착하였다고 한다. 군데군데 돌무더기들이 보이고, 넓은 산등성이 중간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씩 보이는데 아마도 힘들게 산을 일구면서 잠시 땀을 식히는 곳이었으리라. 지금은 벤치를 설치하여 길 걷는 이들에게도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척박해 보이는 곳이지만 아직도 율무와 깨 등을 재배하며 지금까지 가꾸어온 덕분에 완만한 경사와 자연스러운 산등성이, 잔잔히 흐르는 연강(임진강의 연천구간을 부르는 말)을 함께 볼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한 시간쯤 걷다 보면 개안마루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이름 그대로 눈이 탁 트이는 풍경을 자랑한다. 가까이는 민통선마을과 멀리 태풍전망대가 보이고, 그 뒤로 붉은 흙이 보이는 북한의 산까지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도 했다. 조선 후기 대표화가인 겸재 정선은 우화등선(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우연나루에 배를 대다)에 연강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보다 앞선 시대를 살던 학자인 미수 허목은 연강나룻길을 예찬하는 많은 글들을 남겼고, 죽어서도 연천에 묻혔다고 한다.

 

마지막에 오른 산능선전망대에는 ‘시간의 문을 열다-한국의 샤이어, 연강나룻길’라는 글이 있다. 맞다. 연천에서는 시간을 따라가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세계 구석기학설을 바꾼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된 구석기 유적부터 호로고루성 등 고구려산성과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인 경순왕릉, 그리고 고려 태조 왕건 등 4명의 왕과 충신이 모셔진 숭의전, 조선시대 심원사지부도와 일제강점기까지도 번창했던 고랑포구 등 사람의 역사를 품고 있다.

 

또한 아우라지 배개용암, 재인폭포, 주상절리 등 한탄·임진강 협곡은 수십만년전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아름답고 웅장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땅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연천 길을 걸으면서 사람과 땅이 연출하는 시간의 역사 속으로 함께 가보는 것은 어떨까.

 

윤현옥 경기도 DMZ관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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