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에는 장애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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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하는 소리가 났지만,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화마에 스러져갔다. 지난 1월6일 경기도 화성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60대 남성이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일련의 큰 사건사고를 겪으며 ‘안전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은 물론이고, 정부의 정책 역시 ‘안전’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미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었다.

 

화재를 비롯해 지진 등 각종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대비뿐이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이동의 어려움,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비장애인보다 더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재난 발생시 대피요령과 유의해야 할 사항 등을 숙지하고 있는 장애인은 5분의 1 수준인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비하고 싶어도 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것이다.

 

과연 이 사실로부터 소방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장애인이 실제 재난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재난유형별 실질적인 행동요령을 담은 안전매뉴얼의 부재는 장애인의 안전권을 위협하고 있다. 또 장애 유형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할 소방시설은 과연 올바르게 적용되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각 소방서에서는 주택 화재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택용 소방시설인 소화기, 단독경보형감지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설치 독려를 위해 모든 소방대원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고가 말해주듯 소리로 화재 사실을 인지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에게 단독 경보형감지기 설치는 무의미하다. 청각장애인 혹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장애 유형과 특성에 맞는 시각경보기, 신호알림기 등의 개발 및 설치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수원소방서는 그 첫걸음으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매뉴얼 제작에 나섰다. 수원시 수화통역센터, 경기도 시각장애인협회의 도움을 받아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한 그 순간부터 신고 방법, 피난 유도, 대피 요령 등 실질적인 행동요령을 담은 수화 영상 매뉴얼,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형태의 안전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 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각장애인의 경우, 신고방법에서도 비장애인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119 다매체 신고서비스’를 통한 문자, 영상, 어플의 위치정보를 활용한 신고방법을 알기 쉽게 담았다.

 

이 영상은 시ㆍ청각 장애인협회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SNS 채널을 통해 높은 조회수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편, 실제 구조활동에 임하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의 경우 장애인 지원 활동 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 의사소통을 꼽는다. 사회적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급수어 지정 등 맞춤형 정책 추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원소방서는 피난대피 요령에서 나아가 초기소화를 위한 행동 매뉴얼, 또 응급 처치를 위한 행동 매뉴얼 등 지속적인 장애인 안전 매뉴얼을 제작해 나갈 계획이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관한 최종보고서에서 “자연재해를 포함한 각종 위험 상황에서 장애인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모든 재난 위험 감소 정책 또는 그 이행의 모든 단계에서 보편적 접근성(universal accessibility) 및 장애 포괄성(disability inclusion)을 보장할 것”을 한국에 권고했다. ‘기본권’으로서의 ‘안전권’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 안전에는 장애가 없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앞으로도 우리 수원소방서는 ‘안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고 면밀하게 사회 곳곳을 돌아볼 것이다.

 

이경호 수원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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