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정월 보름을 맞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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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의 시작을 정월 초하루 하루에 한정하지 않고 보름까지 즐겼다. 그러므로 정월 보름에 명절이 끝나는 것이다.

 

조상들은 새해를 조심스럽게 맞이했다. 정월 초하루에는 금지하는 것이 많았다. 정월 초하루 일하면 1년 내내 일만한다 해서 쉬게 했다. 욕설이나 거친 말, 찡그린 얼굴도 금지했다. 1년 내내 재수 없다고 여겼다. 친척이 아니면 초하루에는 남의 집에 가는 것도 금지했다. 어른들을 찾아 인사하는 것도 정월 풍경이다. 함께 맞대고 농사짓고 살다보면 싸울 일도 많았다. 1년 내내 말도 하지 않던 사람들도 정월에는 화해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정월 78건의 세시풍속 중에서 대보름날 하루에 관계된 풍속이 40여 건으로 정월 전체의 반수를 넘고, 1년 365일과 비교해도 정월 대보름 하루 행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5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정월과 보름을 중시 여기는 것은 한 해를 시작하는 상징에다 농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명절 앞에 큰 대(大)자가 붙는 정월과 8월은 달과 관련 있다.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한다. 한 해 첫 보름이 떠오르는 정월대보름에 남성과 여성 생식기를 상징하는 줄을 놓고 겨루는 줄다리기, 달집 태우기, 쥐불놀이 등은 풍작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같은 농경국가였던 일본도 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부르고 근대 들면서 양력을 사용하면서도 이 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으니 정월 보름이 갖는 위상이 아주 막강하다. 지신밟기더위팔기귀밝이술부럼 등은 액을 쫓는 의식이니 이 역시 한 해 동안 아무런 탈 없이 보내게 해달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절에서도 정월은 아주 중요한 달로 여긴다. 절에서는 매달 음력 초삼일부터 기도를 올리는데 그 중에서도 정월 기도를 중시 여기고 신도들도 많다. 요즘은 절에 제사를 모시는 가정이 많아져 설날 합동 차례가 분주하다.

 

사찰 역시 절정은 정월 보름이다. 선원에서는 3개월간의 겨울 안거를 이날 회향하고 사찰에서는 신도들과 방생을 한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우리에 갇힌 새를 풀어주기도 하고 복지관이나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하는 등 방생의 의미가 넓어졌다. 보름까지 적멸보궁이나 영험있다는 기도처를 찾는 것도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풍습이다.

 

설날에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세배도 절집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다. 절에서는 이를 통알(通謁)이라고 하는데 설날 새벽 예불을 마치고 전 대중스님들이 법당에 모여 부처님 전에 기도하고 산중 어른 스님들을 찾아 인사한다.

 

그런데 민가의 정월 풍습과 사찰 풍습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기원하는 대상과 내용이다. 민가는 가족과 친척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모든 의식이 이와 관련돼 있다. 사찰을 찾아 정월 기도를 하고 방생을 하는 신도들 역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빈다.

 

스님들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은혜에 감사를 올리고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받아 행복하기를 빈다. 중생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목숨을 잃은 고인(故人)과 미물까지 들어간다. 나와 관련이 있든 없든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챙긴다.

 

‘춘색무고하(春色無高下)’. 차별 없이 두루 세상을 비추는 봄빛처럼 수행자의 기도에는 높고 낮음도 차별도 없다. 정월 새해 밝고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린다.

 

일면 스님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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