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간 천재성과 감수성으로 비운의 삶을 살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생을 조명한 영화 ‘반고흐: 위대한 유산’에서 고흐가 고갱을 만나는 장면.
고흐는 고갱의 그림을 찬탄 어린 눈으로 감상하며 그림 속 콘텐츠가 함의하고 있는 의미를 유추해 낸다. 그리고 고갱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이걸 어떻게 그렸어요? 모델은 없었어요?” 그러자 고갱이 대답한다. “난 그리지 않아. 훔쳐. 난 도둑이야. 자연에서 작품을 훔쳐. 아무것도 모방하지 않아. 스스로 자연을 재창조해.”
‘자연에서 작품을 훔쳤다’는 고갱의 말에서 창의성의 원천을 ‘뭔가를 보고 훔쳤다’라고 이구동성으로 표현한 천재 예술가들이 오버랩된다.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독창성에서 한계를 몰랐던 20세기 최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피카소가 ‘훔치다’라고 표현한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베끼고 모방하는 것은 복제에 지나지 않지만 대상을 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창조적 모방이냐, 단순 모방이냐에 따라 창조물과 복제본의 차이가 될 것이다.
T.S 엘리엇은 ‘어설픈 시인은 흉내만 내지만 원숙한 시인은 훔친다’라는 표현을 남겼다. 천재는 천재끼리 통하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 역시 생전에 직원들에게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컴퓨터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사의 팔로 알토 연구센터의 발명품을 ‘훔쳐왔다’고 했다. 제록스를 방문한 스티브 잡스가 알토라는 컴퓨터를 보고 애플의 매킨토시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잡스는 기존제품을 뛰어넘어 자신의 철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담아 테크놀로지와 감성 그리고 문화가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IT산업을 이끌었다는 데서 그의 위대함이 있다.
‘남의 것을 훔쳤다’고 비난받았던 스티브 잡스는 이번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윈도우에 대해 “메킨토시를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독설을 날렸다.
스티브 잡스는 ‘훔친 사람’으로, 빌 게이츠는 ‘베낀 사람’으로 각각 비난받은 것이다.
월터 아이작슨은 그의 평전에서 ‘빌 게이츠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대단히 독창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평생 라이벌이었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말로 가름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의적이지 않은 필자로서는 위대한 천재들이 말하는 ‘훔친다’라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그 본질에 닿을 수 없어서 칼럼을 쓰는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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