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사막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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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빈 허공에 떠서

깊은 바닥까지 비우고 비워내는

외로운 구도자

이 저녁 붉게 물든 노을

서걱이는 모래 위

할키고 간 바람 흔적도

이제 너의 너른 품안에서

순한 아기가 된다

내 젊은 날 빛바랜 꿈들이

모여 있는 사막 한가운데 작은

오아시스의 환영(幻影),

그 열대의 그늘에 누워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눈 부비며

꽃씨를 뿌린다

두터운 땅 낍질을 깨고나온 뿌리가

지구 반대편 어디쯤

꿈 많은 어느 눈먼이의 정원에

피보다 붉은 꽃을 피우랴

너는 텅 빈 허공에 떠서

사막과 사막의 거친 꿈까지도

잠재우는 외로운 구도자.

 

기청(본명 정재승)

경남 창원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1977) 당선으로 등단. 시집 <길 위의 잠><안개마을 입구>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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