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에도 포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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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布石). 앞날을 위해 미리 손을 써 준비한다는 의미를 갖는 뜻으로 바둑에서 쓰이는 단어다. 중반전의 싸움에 유리하도록 초반에 돌을 벌여놓고,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진지(陣地)를 구축하는 것, 이를 포석이라 한다. 화재에 대한 대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결정적인 순간에 인명과 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 안전을 위한 사전포석이 필요한 것이다.

 

2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1명의 사망자를 낸 광교 신축 공사장 화재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화재예방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보게 했다. 또 조직 내에서는 대응상에서의 문제점도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둑으로 치면 복기(復棋). 문제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비상구 및 피난대피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과 출동차량을 막아선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소방활동에 제약을 받았다는 것. 각종 캠페인과 컨설팅을 통해 끊임없이 홍보해 왔지만, 범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이상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소방청은 지난 11일 대형화재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했다. 효과적인 화재 대응 방식과 신속한 현장 출동 대책, 소방장비 보강, 소방관련법 보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먼저 다수의 인명피해와 연소 확대가 우려되는 화재는 선발 출동대부터 대응단계를 상향 발령해 가용 소방력을 총출동시키기로 했고,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중앙119구조본부에서는 현장의 지원 요청 전에 대형 헬기로 다수의 구조대원을 출동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계기로 경기도 재난안전본부에서도 유사 목욕장 전수조사에 나섰다. 수원소방서는 약 2주 동안 79개소 목욕장(찜질방)이 있는 건축물에 대해 소방특별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이번 전수조사는 피난대피로가 확보돼 있는지, 소방시설이 적정하게 설치돼 있는지 등 피난방화시설에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 여성 소방공무원은 여성 사우나를, 남성 소방공무원은 남성 사우나를 집중점검 했다. 시민들의 협조도 적극적이었다.

 

또 출동을 방해하는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으며, 소방에서는 출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대해 강력한 집행을 실행키로 했다. 그간 손실보상 등 민사문제 발생 소지를 최소화하고자 소극적으로 집행해 온 현실에서 탈피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긴급성에 기초해 소방차 출동장애를 유발하는 차량 등에 대해서는 파괴이동 조치 등 강제처분을 시행하고, 현장 대원이 적극 집행할 수 있도록 손실보상에 대한 전담 대응 체제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물론, 주차공간 미확보 등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크게 보고, 멀리 내다보고, 전체를 본다면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임기응변식의 꼼수가 정수를 이길 수 없다는 바둑의 이치가 안전 관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안전의 중요성이다. 복기(復棋)를 통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중요한 순간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바둑고수들은 대부분 변화를 관리한다. 바둑판에서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를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고, 그래서 기사들은 실패하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전략을 찾는다. 재난유형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재난 현장에서도 우리 소방공무원들은 쓰러지지 않을 전략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대형 화재 앞에, 재난 앞에 쓰러지지 않을 유일무이한 전략은 철저한 준비와 예방에 있다는 점을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경호 수원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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