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열우물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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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열 개가 있다고 하여 열우물, 십정(十井)동이라 불리는 달동네가 있다. 세를 다달이 낸다고 해서 혹은 산 비탈길에 자리 잡아 달과 가깝다고 해서 달동네라고 한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갈 곳 없어진 인천의 철거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산 능선을 따라 다닥다닥 슬레이트 지붕집을 짓고 산 것이 지금의 달동네가 되었다.

 

열우물마을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드문드문 외부인의 발길이 이곳 십정동에 닿고 있다. 비록 가난했지만 정 많던 어릴 적 동네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기념촬영을 하러 오는 외부인들이 아니고서야 동네에 젊은 사람을 구경하기 쉽지 않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에서 달빛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느덧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어 동네를 떠나고, 목욕탕에서 삶의 고단함을 씻어내던 어른들만이 정든 동네를 떠나지 못했다. 마을도 나이를 먹어가며 여기저기 낡고 고장나 이제는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들은 지친 몸을 뉠 수 있는 아늑한 집과는 거리가 멀고, 좁고 가파른 골목길은 행여 넘어질까 살얼음판 걷듯 다녀야 한다. 주민들의 염원과 달리 10년이 넘도록 정비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애만 태웠는데 최근 규모 큰 사업자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불태우니 드디어 제대로 된 사업이 진행되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처음 철거민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던 십정동이 이제는 이번 정비사업을 통해 청년·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적은 임대료로 집을 내어준다고 하니 나의 마음도 든든하다.

 

1986년 9월 개업한 열우물목욕탕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맡은 소임을 다하고 지난해 5월 철거됐다. 한평생 내 일터이자 마을의 중심 역할을 했던 목욕탕이 한순간 부서 없어지는 광경을 보니 30년이 통째로 없어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제야 마을의 시간이 제대로 흐르는 것만 같다.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있던 마을은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지만, 주민들은 살면서 말도 못할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고, 못 살고 가난한 동네라는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한평생 이 동네 토박이로, 목욕탕 주인으로 살면서 동네 주민들과 살을 맞대며 한 가족처럼 지내왔다. 재개발을 한다고 해서 이웃들이 뿔뿔이 흩어진다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업에 1천550세대가 원주민 분양분이고, 많은 수가 계속해서 십정동에 살기를 원한다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깨끗한 새집 아랫목에 누워 “그땐 그랬지”하고 달동네를 함께 추억할 이웃들이 생긴 것이다.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문밖에 내놓은 연탄, 18번 버스, 상정 문구·슈퍼…. 이제는 영화·드라마의 몇 장면 속에, 누군가의 추억 속에 남아있겠지만 우리 십정동 주민들이 같은 마음으로 열우물 마을의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믿는다. 전국 최초로 부동산펀드에 의해 추진되는 십정2구역 정비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동네 주민들이 따뜻한 집에서 전과 같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리라 확신한다.

 

이찬구 인천 십정2구역 주민대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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