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가 밝았다.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인사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해 인사는 전화가 필수 수단이었다. 서로 목소리를 주고 받아야 하는 전화는 어느 정도 친분이 없으면 걸기 힘들다.
오래전 통화를 했거나 최근 소식까지 알 정도로 각별하지 않으면 자칫 실수할 수도 있다. 무슨 인사를 할까 이리저리 한참 생각하고 걸어야 한다. 그래서 전화 인사는 정성과 예의가 묻어난다. 전화는 윗사람이 먼저 걸지 않는다. 반드시 아랫사람이 먼저 묻는 것이 전화 인사법이다. 인사받는 사람이 흐뭇해진다.
전화가 흔하지 않을 때는 직접 가서 인사를 올렸다. ‘아주’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먼 길을 버스 타고 가지 못한다. 어쩌면 하루 정도 자고 와야 할지도 모른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한다. 그래서 더 반갑다. 어릴 적 산 모퉁이를, 혹은 언덕을 넘어 그림자만 얼핏 보이는 순간부터 혹시 우리 집을 찾아온 친척인가 싶어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던 기억이 나이 든 분들은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친척은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만큼 외지인 방문이 드문 시절이었다. 함께 가슴 두근거리며 보던 아이들도 멀리서 온 손님을 따라가며 부러워했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이야기다. 따져보니 불과 40년 전이다.
며칠 전의 새해 인사는 전화로, 혹은 걸어서 찾던 시절과는 참 많이 다르다. 새해 전날부터 ‘카톡’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서울 경기는 물론 지방과 해외에서도 온다. 친밀한 분도 있고 자주 못 만나 궁금했던 분도 있고, 누구 신가 고개가 갸웃해지는 분도 있다. 반가워서 답장했더니 답례가 없다. 전화번호에 등록된 사람에게 일괄 인사를 보내는 기능이 있어서라고 한다.
어느 인사법이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모두 교통 통신이라는 문명의 수단이 만든 인간 관계이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요즘 인사법이 싫다고 과거가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고 싶은 사람 자주 쉽게 볼 수 있다면 오히려 감사하게 여길 일이다.
불교 입장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지나간 일에 마음 두고 있으면 본인만 괴로울 뿐이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해서 지금을 망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밥 먹을 때는 열심히 맛있게 먹고, 공부할 때는 온 힘을 다해서 외우고, 놀 때는 만사를 잊고 땀 흘리면 매일 매일이 행복한 나날이니 1년 365일이 기대와 희망에 찬 첫날이 될 것이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미래가 불안해도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자기도 모르게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새해 첫날이 좋은 까닭은 지난날을 반성하고 마음속에 새로운 약속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지난 잘못 허물을 참회하고 단절하는 것이다. 지난 한 해가 불만족스럽다 해도 잊고 새해를 맞아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반성하면 된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 이르길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진다”고 했다. 과거 허물을 자책하지 말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각오를 다지고 실천하면 한 해를 웃음으로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밝게 웃고 행복한 나날이 되도록 부처님 전에 기도 올린다.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일면스님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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