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자세 외교로 무너진 국가위신과 국가 간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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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모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갑질이라고 한다. 여기엔 갑의 강압적인 역할과 을의 저자세가 깔려 있다. 갑질은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민간의 관계뿐 아니라, 국가 간에도 존재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형평성 없이 부당한 영향력 행사한다면 국가가 국민에게 갑질하는 것이다.

 

국가 간의 갑질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약소국과 ‘상호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선의를 포함하는 갑질이고, 또 하나는 약소국에게 일방적이거나 부당한 요구로 ‘자국만의 국가이익’을 취하려는 갑질이다.

 

후자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관계로, 자국의 이익과 맞지 않으면 은연중에 압력을 가하거나 조장해 제재하는 형태다. 이는 강대국보다 약소국을 향해 가해진다. 강대국일 경우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자는 국제 규범상 상호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갑질이다. 이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상호 국가이익이 일치했을 때 행해지는 관계이므로 갑을관계라기보다는 ‘전략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현 상황에서 국가 간에 갑질의 예로 사드를 들 수 있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해 사드를 배치한 것은 한국과 미국의 국가이익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한국 방어와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은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상호 국익이 부합한 것이다. 그런데 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에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일까?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떠오르는 것이 많다.

 

과거 조선이 세자책봉을 위해 주청사를 보내고, 주요정책과 관련한 사신단을 파견했다. 분명하게 당시 국가 간의 관계는 갑을관계였다. 그러나 21세기 각 국가는 평등하게 자유로운 교류를 하고 있으며, 갈등발생 시 이를 조정할 UN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보아도 ‘을’의 대우를 받았다고 평하는 이번 중국방문으로 얻은 이익은 무엇일까?

 

사드문제로 얽힌 갈등을 푸는 등 얻은 것이 많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손상된 자존심과 추락한 국가 위신에 비길만한 이익인가 하는 점에선 빈약하다.

 

국제외교에서 ‘국가와 국민의 위신’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거나 회담을 할 때는 국가 간의 갑을관계를 떠나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1945년 포츠담 회담에서 처칠, 스탈린과 트루먼이 회의장에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가 합의되지 않아 3개의 출입문으로 동시에 입장했다. 이처럼 국제외교정치는 국가의 존엄성과 위신을 지켜야 한다.

 

국빈으로 초대한 대통령을 혼밥하게 하고 수행하던 기자를 폭행했다. 초대한 사람이 평범한 개인이라 해도 있을 수 없는 갑질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굴욕적이었다는 것이 부끄러워 ‘우리가 맞을 짓을 했다’, 중국 측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저자세를 넘어 자아비판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번 중국방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방문목적보다는 그 외의 것들에 관심과 걱정이 집중돼 본래 목적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근석 정책시스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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