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원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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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 들어 가면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이 없어도 그 주변을 통해 그 사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듯이 지난 11월 수원에 방문했던 첫 순간, 즉 기차에서 내릴 적부터 그런 분위기가 바로 느껴졌다. 역에서 기다려 준 사람의 그 따뜻함이 호텔까지 빨간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팔달산 서장대를 향한 길은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시원한 레몬빛의 은행나무 덕분에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산에서 사는 푸른 소나무 향기도 그윽했다.

그 소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까치들도 운치를 더했다. 그 나무들은 팔달산 기슭에 있는 궁궐이 정조대왕이 머무르던 화성행궁이라는 곳인지 알고 있을까? 화성행궁 앞에서 수백 년을 견디고 살아 온 느티나무 몇 그루는 확실히 알 것이다. 매우 슬프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박래헌 수원시 문화체육교육국장의 전문적인 안내를 받으면서 행궁은 더욱 더 흥미로운 곳이 됐다. 화성행궁 뒷길에 자라고 있는 노란색 야생 국화의 아름다운 향기도 수원의 팔달산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화성행궁 맞은 편에 위치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2번의 인상적인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수원 방문의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줄리안 오피가 사람의 걸음을 예술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움직이는 LED 그림’들은 최소한 나에게는 새롭고 인상적인 추억이었다.

권용택 화가의 작품 전시회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의 돌(청석) 그림들은 어쩌면 세계 미술사에서 새로운 페이지를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척이나 짧았던 수원화성박물관 관람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곳에는 많은 흥미로운 것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수원에서의 첫 식사는 약수물로 지은 향기로운 밥이었다. 전통 한옥집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눠 맛은 더욱 좋았다. 함께한 막걸리 역시 혀 끝을 오랫동안 맴돌았다.

 

수원의 저녁빛으로 둘러싸인 효원공원도 인상 깊었다. 공원의 호수를 거닐 때는 갑자기 이백 시인이 나타나 시를 읊었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을 정도로 중국 문화가 생생하게 재현돼 있었다.

 

수원 시니어합창단 연주회는 한국인들의 노래 사랑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노래하는 사람과는 걱정 없이 어울려도 좋다’는 독일 속담이 떠올랐다. 합창단의 신나는 공연을 보면서 일행들과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던 장면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날의 즐거움은 계속 이어졌다. 연주회 뒤에 즐기려던 ‘플라잉 수원’은 영업시간이 끝나는 바람에 놓쳤지만, 대신 찾은 화성성곽 길은 또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기억에 오래 간직될 산책이었다.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품은 성곽은 수원시를 그리고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철옹성의 느낌이었다. 몰래 신발을 신은 채 포루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CCTV로 확인해 경고 메시지를 방송하는 것을 본 뒤에는, 수원은 참 안전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박 국장에게서 아주 어여쁜 수원청개구리 인형을 작별 선물로 받았다. 한국 전역에서 사라진 청개구리가 수원에서만 살아남았다는 의미가 담긴 선물이었다. 청개구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슬펐지만, 팔달산 산책로나 화성성곽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뻥 뚫리고 깊은 숨을 내쉬었던 것을 떠올리니 수원이 얼마나 건강한 도시인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수원을 다녀오고 나서 든 생각은 ‘다시 가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랑하는 이와 성곽을 거닐거나, 혹은 전통시장을 돌아다니고 플라잉 수원을 타 보고 싶어졌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수원을 떠나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그날 나는 수원이라는 도시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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