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故 이병곤 소방령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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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열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12월, 모두가 가족, 친구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때 기억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2년 전 오늘, 칼날같이 매서운 바닷바람이 부는 서해대교에서 100미터가 넘는 케이블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故 이병곤 소방령….

 

많은 사람들이 힘든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그리던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향하던 서해대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화재와의 사투를 벌이던 그는 결국 기다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7.3㎞의 끝이 보이지 않는 철교 위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외로이 다리를 지켰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하던 이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소방관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실천하는 보살’ 그리고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소방관은 우리사회의 가장 어둡고 소외된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구도자요, 따듯한 인간의 온기를 전하는 숨결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 순전한 이타적 행위는 때때로 안타까운 희생을 낳게 되고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가슴속에 안고 가야 하는 마음의 생채기를 남기곤 한다.

 

혹자는 소방관들의 용기가 하늘에서 주어진 천성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뻘건 불길과 새까만 농연이 가득한 화재현장, 선홍빛 핏자국과 고통의 신음이 가득한 사고현장은 천성이라는 용기만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소방관들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귀한 아들, 딸이며, 듬직한 배우자, 그리고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그들도 위험한 순간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못내 머뭇거리는 연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소방관이 여느 사람들과 다른 것은 마치 성직자들이 신앙 안에서 천부적 소명의식(Calling)을 갖고 자신을 내어놓듯 이들 또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거룩한 소명의식으로 본능적으로 위험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방관들의 희생과는 달리 이제까지 우리사회는 열악한 소방관의 현실에 대해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새 정부 들어서 소방의 현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잇따르고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특히 고인의 희생을 계기로 경기도소방은 여러 가지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지난해 경기도는 종합적인 소방력 강화계획으로 ‘이병곤 플랜’을 추진해서 짧은 기간 동안 2천여 명의 소방관을 충원하고 9개의 안전센터를 신설했으며 400여 대의 노후된 소방차량을 교체했다. 또한 밤낮없이 위험하고 참혹한 재난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관서마다 PTSD 심리치유시설을 설치하고 부상소방관의 치료비를 전액 지원하였으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소방공무원을 위해 시간외 어린이집 40개소를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날로 발전하는 경기도소방을 보며 이제는 우리 소방관들이 응답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와 내 가족보다는 사회와 우리의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했던 모든 순직 소방관의 정신과 국가 안팎이 힘든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우리 소방관의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뜻과 정성을 모아주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우리 소방관들은 더욱더 우리 사회의 낮고 소외된 곳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듯한 구원의 손길과 인간의 온기를 전해야 할 것이다. 2년 전 그날의 故 이병곤 소방령처럼 말이다.

 

이재열 

경기도재난안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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