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 경영의지’ 꺾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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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옥주
요즘 중소기업 현장의 이슈는 단연 ‘근로시간 단축’이다. 중소기업계는 지난 7월 2018년 최저임금 결정으로 펀치를 맞은 이후, 다시 한번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강력한 펀치를 맞을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장에서 만나는 중소기업 CEO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더해 근로시간 단축까지 추진하면 중소기업의 해답은 인력을 줄이거나 사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처럼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꺾고 사업을 지속하는 데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긴 건 사실이다.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중소기업 CEO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금, 기술, 판로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한 사람의 인재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가장 소중한 자원인 직원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은 회사의 앞날을 위해서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는 낮은 노동생산성, 경직된 인력 운용과 기업문화, 초과근로에 대한 금전보상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은 부족한 인력과 낮은 임금, 생산성을 보완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영세기업의 비중이 높고 기업 간 격차가 극심한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장시간 근로 관행의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 근로시간은 앞으로 축소되는 것이 맞다. 다만, 한 번에 큰 부담을 안겨 수용을 포기하게 하는 입법을 추진하기보다는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주 40시간 제를 도입할 때는 주 4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기업규모별로 총 6단계로 나누어 7년의 세월을 줬다. 한시적으로 첫 초과근로 4시간에 대한 할증률을 절반으로 낮추고 3년간 연장근로시간을 추가로 허용하는 등 완충장치를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서 300인, 50인을 기준으로 3단계로 나눠 총 16시간을 완충장치 없이 단축하자는 안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근로시간 법제가 적용되는 사업장 중 93%가 50인 미만 사업장이다. 과거 입법례와 같이 단계를 좀 더 세분화해 여건이 되는 기업은 바로 시행하더라도, 2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단축 후 적용실태와 경제상황을 보고 시행시기를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주 16시간의 근로시간이 한 번에 단축되면 76.9%의 중소기업에서 생산차질이 우려되며, 중소기업은 생산량 보전을 위한 설비투자 비용증가가 불가피하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300인 이하 사업장의 부족인원이 약 44만 명이나 돼 임금이 낮아진 영세중소기업은 근로자를 구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대기업·중견기업에는 선택의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중소기업, 특히 20인 이하 소기업·소상공인에게는 사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이다. 중소기업인들이 기업을 경영하는 이유는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공에도 있지만, 기업경영을 통해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자부심도 한몫한다. 이것이 소위 ‘기업가 정신’의 원천이 아닐까 한다. 20인 이하 영세중소기업들은 IT 벤처처럼 사회적 선망을 받지도 않고 크게 성장하기도 어렵지만, 산업 생태계의 저변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정책의 당위성, 선명성을 내세워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활기차고 건강한 저변이 조성될 수 있도록 단축시간, 할증률, 노사합의에 따른 추가연장근로 등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기업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심옥주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지역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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