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4차 산업혁명과 지역 건설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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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우리 시대의 화두다. 경기도라고 예외가 될 수 없고, 건설산업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도 애매모호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요소가 있다. ‘융합과 통합’이 그 중 하나다. 기술과 기술의 융합, 산업과 산업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전통적인 업종이나 업역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기획-설계-생산-판매-애프터 서비스에 이르는 전과정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통합되고 있는 것도 뚜렷한 추세다.

 

건설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느리지만, 융합과 통합은 과도한 정부규제로 인해 더더욱 미진하다. 건설업종만 해도 종합건설업(5개 업종)과 전문건설업(25개 업종)을 합치면 무려 30개가 있다. 전기공사업, 정보통신공사업, 소방공사업, 문화재 수리업도 건설공사업의 일종이다. 하지만 제각각 별개의 법률과 정부기관에서 규제하다 보니 건설산업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세분화된 수많은 건설업종이 산재해 있다 보니 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각각의 업종별로 협력보다는 배타적 이익확보를 위한 규제강화 요구는 강하다. 기획-설계-시공-유지관리에 이르는 과정은 유기적이지 못하고 파편화돼 있다. 칸막이식 업역규제 때문에 건설생산 과정의 수직적 통합도 불가능하다. 기획은 발주자가 하고, 설계는 건축사 사무소와 엔지니어링업체가 담당하고, 유지관리는 공공부문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건설업체는 시공만 할 수 있다. 시공도 단일공사 전체를 건설업체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기나 통신공사는 법적으로 분리발주가 의무화되어 있다. 작년에는 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 기계설비공사까지 분리발주하자는 조례 제정이 추진되기도 했다.

 

‘융합과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통합발주가 바람직하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통합발주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설계와 시공의 통합발주(=턴키)가 널리 활용되고, 시공업체가 설계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의 발주방식도 활성화되고 있다. 건설업체에게 시공과 유지관리 업무를 묶어서 발주하는 사례도 많다.

통합발주 공사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소규모 창업기업의 인수합병도 활발하다. 민간부문에서 통합발주방식의 활용은 더욱 뚜렷하다. 한건의 공사를 발주하면서 믿을만한 건설업체와 한번만 공사계약을 체결하면 되는데, 굳이 전기 따로, 정보통신 따로, 소방 따로, 기계설비까지 따로 몇 건이나 계약할 이유가 없다. 통합발주를 통해 시공 참여자간의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우리 건설산업은 규제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산업화 초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크다. 산업화 초기의 패러다임은 ‘분업과 전문화’였다. 건설업체가 워낙 취약한 시기에는 건설생산과정을 분야별로 세분화하고 겸업을 금하거나 분리발주를 강제하는 규제도 어느 정도 논리적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정책과 제도는 ‘융합과 통합’에 기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칸막이식 건설업역 구조를 철폐해야 하고, 시대착오적 규제에 기반한 건설생산체계와 발주제도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역 건설정책도 ‘융합과 통합’을 지향해야 지역 건설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산업화 초기로 되돌아가는 듯한 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수는 없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 보다 기존의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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