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외래정액제란 65세이상 노인의 외래진료비가 1만5천원 이하면 본인부담금을 1천500원, 1만5천원 초과할 때는 진료비의 30%를 낸다. 하지만 개편안은 양방병·의원에 한해서 2만원까지 10%, 2만5천원까지 20%, 2만5천원 초과 때 30%를 본인이 내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수가변동정책에서 한의·치과·약국은 적용대상에서 빠져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2만원의 진료를 받으면 양방병원은 2천원, 한의원은 6천원을 내야한다. 양방병원의 문턱은 낮아진 반면 한의원 등의 문턱은 3배나 높아지게 되었고,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노인환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이런 진료비 구조라면 노인들의 양방병원 쏠림 현상이 나올 수 있다. 오죽하면 ‘복지부의 양방병원 환자 몰아주기’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번 개편안은 양방병원에 유리한 룰인만큼 다른 의료계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양방병원과 한의원을 각기 다른 룰로 경쟁시킨다면, 참으로 불공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복지부는 양의계와 한의계의 갈등을 증폭하고 분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양측을 중재하고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거꾸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 됐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러한 불공정한 정책집행이 오래전부터 지속됐다는 것이다.
첫째, 난임치료비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저소득층 난임부부들에게 수백만원의 체외수정 및 인공수정 시술비를 지원해오다가, 나중에는 소득 구분 없이 지원해주더니, 마침내 지난 1일부터는 건강보험에 포함하기로 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고비용의 난임치료비 국가지원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난임치료에서 한의약 치료 역시 성공률이 높고 안전한 치료법이다. 비용 부담으로 고통이 큰 난임부부들에게 양방 치료비에 대해서만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한의약 치료비는 단돈 10원도 국가에서 지원해주지 않는 것은 불공정한 정책이다. 마치 휴대폰을 제조하는 L사와 S사 두 회사가 있는데, 한 회사 휴대폰 구입시에만 정부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과 다름없으니, 교묘한 진료선택권의 제한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한의사에게만 현대식 진단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의료인이 아닌 수의사도 사용하는 X-레이, 초음파 진단기를 의료인인 한의사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국가가 면허를 부여한 의료인에게 환자의 질병 상태에 대한 정보와 경과 관찰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를 제한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또 한의사에게 허용된 혈액검사소변검사물리치료 등을 허용하되, 건강보험에는 배제시켜 양방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교묘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
오죽하면 보다 못한 시민단체에서 이러한 불공정을 개선하라는 요구를 정부 여당에 촉구하여, 한의-정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약속하였다 하니, 당면하고 있는 각종 현안들, 한의난임사업물리치료 요법의 급여화치매국가책임제에서 한의계의 역할한의사 진단기기 허용 및 건강보험 급여화 등에서 그동안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의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형평에 맞게 개선되기를 예의주시해 볼 일이다.
‘보건복지부가 양의사들의 이익단체 같다’는 오명을 씻을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의계에 가혹하리만큼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은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기회는 균등한, 과정은 공정한,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복지정책 기조에 부응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윤성찬 경기도한의사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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