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존재감 없는 20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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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즉, 우리나라도 대부분 민주국가들처럼 삼권분립의 원칙이 적용된다. 삼권분립 원칙이 보편타당하게 채택되는 이유는 국가로 상징되는 막강한 권력기관의 상호견제다. 국가의 권력이 어느 한 쪽에 쏠리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며 권력의 균형을 이뤄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삼권분립의 원칙이 헌법에만 존재하는 원칙이 아님을 여실히 확인시켜준 것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된 사건이다.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임기 말 또는 임기 후 대부분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목됐다. 사람보다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보완하기 위해 개헌 논의를 시작했지만, 그 종착점은 어느 곳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문제는 탄핵 이후,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새로운 대통령도 강력한 대통령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0일 동안 대통령제의 위력을 또다시 실감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탈원전, 건강보험 강화, 아동 및 노인수당 등등 수십년 동안 풀리지 못했던 사회적 이슈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역사적인 사안도 대통령의 언급에 바뀌는 형국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80%’라는 대통령 지지율은 대부분 언론매체와 방송을 행정부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입법부는 실종된 듯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 부여된 첫 번째 임무인 인사청문회에서 여당은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위원 등 후보들을 감싸기에 바빴다. 야당은 언론이 밝혀낸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하는 무능을 보였다. 청문회 전에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이 청문회를 통해 명쾌하게 밝혀지기보다는 마치 비리 의혹 후보자에게 소명기회를 주는 듯했다.

 

재원조달이 불분명한 각종 포퓰리즘적 정책이 연일 발표되는 정국에서 기뻐하는 국민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요 재원에 대한 논란과 증세 우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소요재원 하나 정확히 짚어내고 대책을 논의하는 국민의 대표 한 명 찾아보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다.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되는 일촉즉발의 안보 위기 속에서도 대책 없는 여당과 대안 없는 야당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곧 정기 국회와 국정감사, 예산 심의 등 입법부인 국회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내는 정치 일정이 다가온다. 이번 정기 국회는 정권이 바뀐 후 시행되는 국정감사인 만큼 절반은 전 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될 것이며 절반은 현 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될 것이다. ‘살균제 달걀 파동’에서 보듯이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여야의 네 탓 공방이다.

 

국회는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국정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를 국정감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또다시 국정감사 기간에 집권 여당은 행정부를 감싸고, 야당은 근거 없는 폭로전과 대안 없는 비방이라는 구태를 보인다면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해진다. 제20대 국회는 아직 3년의 임기가 남았다. 입법부로서의 기본적인 책무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건강한 입법부가 있어야 건강한 행정부도 가능하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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