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여러 사진 속에는 어린 시절 요람의 사진부터 첫돌 사진, 동네 애들과 멱 감고 물장구치는 어린 시절, 학창시절, 소풍, 운동회, 군대, 결혼, 환갑, 여행의 추억 등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 아름다운 이야기 거리들이 많이 담겨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며 그리고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한분 한분은 내 삶에 참으로 소중한 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다시 찾은 마음으로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동안 잊고 있던 참으로 내게 소중했던 그때 그 사람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 내 안에 하나하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음을 인식시켜 준다. 그렇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잊어야 할 과거가 있는가 하면, 오래오래 잊지 말아야 할 과거가 있다. 바울은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쫓아가노라”(빌3:13,14)라고 이야기 한다. 마땅히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야 한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이 되어서 과거에 묶여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발목이 잡히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잊어야 할 과거가 있는가 하면, 잊지 말아야 할 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한 가정, 한 공동체(교회) 혹은 한 기업이나 한 나라가 발전해온 역사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하지만 OECD 국가 중 10위권의 나라로 성장발전한 뒤에는 그때 그 시절 헌신하고 수고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허리를 졸라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하며 살아온 그때 그 시절이 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다. 어떤 목사님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은 “네가 남에게 도움을 준 것은 빨리 잊어버리고 도움을 받은 것은 오래도록 잊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삶에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노라고 간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 그만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생은 넓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도 있어야 한다. 아니 넓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인생의 깊이이다. 인생은 존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 이유이다. ‘얼마나 빨리 달려왔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바른 의에 방향으로 달려왔느냐‘는 것이다. 온통 세상은 ‘과거 진상 규명’이란 틀로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뒤섞어 놓고 있다. 진실의 아름다움은 기싸움으로 될 일이 아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 가을에는 한 번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게 참으로 소중했던 사람들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잊어버리고 지나왔던 그 좋은 내 인생의 동반자들을 말이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면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부러울 것이 없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닐까? 색 바랜 앨범과 오래된 수첩 속에 희미해진 주소를 찾아내서 내 마음 속에 박혀있는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싶은 여유를 부리고 싶다. 마음을 담은 엽서에 그간에 격조했던 안부를 물으며 내 소중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싶다. 내 살아온 날이 이만큼 멀리 왔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은 내 인생 안에 고스란히 축적되어 남아있는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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