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응지론농정소(應旨論農政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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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한민국의 농업, 농민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정 및 시ㆍ도정을 책임진 정치가들은 과연 한국의 농업을 어디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역사를 통해서 답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농업국가로서 農者(농자)는 天下之大本(천하지대본)을 근본이념으로 삼은 국가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농민이 ‘천하의 근본’으로 대접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수탈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배세력은 농민 즉 백성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기치를 내 걸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농업부문에서 질적ㆍ양적인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었으며 나라는 만성적으로 경제적 후진성을 면할 길이 없었다. 배고픔에 지친 농민들은 삽과 쟁기 대신 죽창을 들고 타락한 관리들에게 대항하였고 사회는 혼란스러워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백성을 사랑한 임금 정조는 왕명을 통해 널리 흥농책을 구했고 당시 곡산부사로 있던 다산 선생이 이에 응하여 올린 상소가 응지론농정소(應旨論農政疏)이다. 말 그대로 교지에 응하여 농정에 관해 논한 상소란 뜻이다.

 

다산 선생은 응지론농정소를 통해 농업정책의 방향을 혁신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편농, 후농, 상농 이 세 가지를 기본강령으로 들었다. 편농이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농업기술을 개량해야 한다는 것이고, 후농이란 힘들게 일한 만큼 농민이 부유해야 한다는 것이며, 상농이란 농민의 신분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현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농민은 잘 살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농업은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다산삼농(茶山三農)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편농정책을 들여다보면, 다산 선생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편농을 위해 경지정리, 수리시설의 개발 및 유지보수 등을 정부가 직접 관장하고 있으며 농촌진흥청이란 연구기관을 통해서 종자는 물론 생산기술, 농기계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후농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6, 70년대 수출과 산업화 중심의 정책을 통해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루어냈는데 이는 농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며 이렇게 얻어진 경제적 과실은 농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농민의 희생은 FTA 등 무역개방정책이 판치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강요되고 있지만, 무역개방으로 인해 얻는 이익을 농민에게 돌려준다는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농민의 소득은 도시 소득에 비해 점점 낮아질 뿐이다.

 

농민의 신분을 높여야 한다는 상농은 어찌 보면 후농하고 관계가 깊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어야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돈 없는 농민의 신분이 올라갈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농가 소득이 줄어드는데 계속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심각한 식량안보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도 식량안보 없이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깊게 인식하고, 그동안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당해왔던 농촌과 농민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국가적 동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의가 이루어진다면 머지않아 다산 선생이 제시한 삼농이 실현될 것이다.

 

염동식 경기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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