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시인 테오그니스가 기원전 6세기에 한 말이다. 미(美)를 추구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름다움을 탐하는 욕망은 태초부터 시작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가?
오늘날 대중매체는 예뻐지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매일 수많은 미용 관련 광고를 쏟아낸다. 상업주의와 자본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 초연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동질성을 요구하는 무언의 사회적 압박과 주변사람을 따라 하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외모를 중시한다는 뜻인 외모지상주의란 용어는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새파이어가 처음 사용한 말로 원어는 루키즘(lookism)이다. 2000년도 신문 칼럼에서 외모를 인종, 성별, 종교, 이념에 이어 새로운 차별요소로 지목하면서 부각되었다. 외모가 곧 사람 사이의 우열을 가르는 기제로 작동되어 외모에 집착하는 사회 풍조를 일컫는 말이다.
아름다워야 우월한 위치에 서고, 아름다워야 사랑받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지만,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때론 무모하고 때론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멈출 줄 몰랐다.
중국 근대에 성행했던 전족, 태국의 소수민족인 카렌 여성들이 목에 여러 층의 황동으로 된 링을 끼워 다녔던 전통, 서양의 코르셋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가학적이고 그릇된 문화들이 있었다.
패션의 완성은 하이힐이라는 말이 있다. 하이힐을 신으면 몸매 교정과 자신감이 동시에 상승된다는 이유에서 패션리더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하이힐을 신고 걸으면 발가락이 받는 압력으로 엄청난 고통과 무지외반증, 족저근막염, 척주후만증, 무릎관절염, 혈류순환장애와 같은 심각한 질환이 생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패션계의 무한애정을 받았던 하이힐. 그런데 최근 하이힐을 신는 여성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수 년 전부터 굽이 없는 단화나 운동화와 같은 심플하고 편한 신발이 패션가를 휩쓸고 있다. 거리에서 많은 여성들이 운동화를 신고 활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커리어 우먼들은 고급스러운 슈트와 운동화를 패션아이템으로 삼아 역동적이면서 파워풀한 이미지를 연출해냄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패션은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의 사회상과 고유한 문화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 패션계에서는 ‘예쁜 것이 선(善)’이었던 소비패턴에서 실용성을 선택하는 최근의 괄목할만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관습과 유행이라는 미명하에 획일적으로 행해진 미의 기준이 누군가에게 일방적이고 불편하고 억압적인 것이라면 재고해 봐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이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취향, 만족도를 바탕으로 할 때 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미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다양해질 때 고품격 문화, 인간중심의 문화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국진
칼럼니스트·커뮤니케이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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