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살림살이를 잘하는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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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임금이 왕자를 결혼시키기 위해 왕자비를 간택하였다. 그때 왕은 무엇보다도 지혜가 있는 규수를 왕자비로 맞아들이고 싶어서 시험을 치르기로 하고 왕자비 후보들을 한데 불러 모아 놓고 쌀을 한 말씩 주면서 “이 쌀 한 말을 가지고 일 년간 먹고살다가 한날에 모이도록!” 명을 내렸다.

물론 각자에게 이행여부를 살피는 수행원들을 붙여서 철저히 감독을 하게 하고 보고토록 했다.

 

쌀 한 말씩 받은 규수들은 각자 나름대로 한 말의 쌀을 가지고 일 년을 먹고살기 위해 절약하고 절약하며 견디어 내었다. 일 년 후가 되어 약속한 날에 임금님 앞에 모인 규수들은 거의 뼈 가죽만 남은 채로 몰골이 상했을 뿐 아니라 아예 들 것에 실려 오는 규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한 규수는 일 년 전보다 더 건강하고 활짝 핀 얼굴로 임금님 앞에 덕 광주리를 이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모두 한 말의 쌀을 가지고 일 년을 견디느라 이렇게 여위었거늘 그대는 어떻게 일 년 전보다 더 살이 찌고 건강해졌는가? 그리고 이 떡은 또 무슨 떡인가?”라고 임금님이 물었다. 이 규수는 대답하는 말 “임금님 저는 본래 가난한 집에 태어났습니다. 대대로 물려오는 가난으로 한 번도 흰 쌀밥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 년 전에 임금님께서 한 말의 쌀을 하사하실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던지 그 쌀을 가지고 부모님께 흰 쌀밥을 지어서 배부르게 드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날 즉시 절반을 덜어서 흰 쌀밥을 지어 부모님과 동생들을 배부르게 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동생들에게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게 하고 남은 절반을 가지고는 떡을 만들어서 그 다음날부터 시장에 나가 이고 다니면서 떡 장사를 했습니다. 이 거리 저 거리로 다니면서 ‘떡 사세요, 떡 사세요. 임금님 쌀로 만든 꿀떡 사세요!’하면서 떡 장사를 했는데 뜻밖에도 호응이 좋아서 떡이 잘 팔렸습니다. 나중에는 여기저기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온 식구가 떡 장사에 매달려도 손이 모자랄 지경이 되었습니다. 

떡 장사해서 남은 이익으로 또 쌀을 사서 떡을 식구들이 밥을 해 먹고 또 떡을 만들어 팔고, 그렇게 하는 일 년 동안에 집안 형편도 좋아지고 식구들도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임금님 뵈옵기로 약속한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빈손 들고 오기 부끄러워 이렇게 떡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지혜인가?

 

흔히 한 집안에 새 며느리가 들어오면 ‘살림꾼’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살림꾼은 살림살이를 잘해서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는 좋은 살림꾼이 되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살림살이를 잘못해서 집안을 어렵게 만드는 살림꾼이 있다. 살림꾼은 살림살이를 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살림꾼인가? ‘살림살이’라는 말은 ‘살다’라는 자동사와 ‘살리다’라는 타동사가 합해진 말이라고 한다. ‘살리다-살다’ 다시 말하면 ‘남을 살리면 나도 산다’ 라는 의미이다. 살리는 지혜가 있는 살림꾼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살림살이의 종교이다. 우리 주님은 살리셨다. 그리고 주님은 사셨다. 주님은 참으로 살림살이를 잘하시는 좋은 살림꾼이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리고자 하는 자에게 복을 주셔서 실리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은 남을 밟으면 내가 높아질 줄 안다. 남을 죽이면 내가 사는 줄 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남을 살리면 내가 산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잘하는 좋은 살림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좋은 살림꾼이었다.

 

야곱을 보자. 외삼촌의 집을 부자로 만드니 자신도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나의 나라에 종으로 팔려간 자리에서 살림살이를 잘하니 민족을 살리는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었다.

 

주님에게서 살림살이의 지혜를 배우자. 그리고 좋은 살림꾼이 되어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에 살림살이의 역사가 있게 하자.

주님! 좋은 살림꾼으로 살게 하소서!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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