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과 종종 잘 맞아떨어지는 장마철은 파리들이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높은 온도와 습도가 유지된다. 게다가 인간들이 자신들만의 볼일을 보고 떠난 휴가지 곳곳에는 파리 전용 식탁이 될 것이 뻔한, 수많은 종류의 음식물과 배설물이 버려져 있기 십상이다. 어쩌면 휴가철은 인간이 만든 파리들을 위한 축제기간이나 다름없다.
수 십 마리를 모아도 1g이 될까 말까 한 작은 파리는 정말 성가신 존재다. 눈치는 어디에 묻어두었는지 아무리 쫓아내도 단 몇 초면 제자리를 찾아든다. 그리고 이 파리를 잡으려 손이라도 뻗으면 어찌나 빨리 피해버리는지, 위에서 말한 파리목숨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잽싸다. 파리는 과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도망을 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파리의 동체시력에 있다.
우리 눈은 초당 60매 이상으로 움직이면 그 움직임 하나하나를 느끼지 못하는 시신경을 가진 동물이다. 그런데 파리는 초당 250번의 장면전환을 일일이 하나하나 판독해 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동체시력이라 하는데 파리가 바로 이런 동체시력에 관한 최고의 자리에 있다시피 한다. 그러니 제아무리 빠르게 손을 휘둘러도 파리가 보기에는 슬로우 비디오나 마찬가지다.
‘파리목숨.’ 크게 잘못된 표현이었다.
파리가 가진 이 같은 동체시력을 잘 이해하면 혹 휴가지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들과의 조우로부터 더욱 쉽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이 생긴다. 여러분 앞에 너구리 오소리 등이 나타나 위협적인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우리는 보통 막대기 등을 상하좌우로 힘껏 휘두르며 쫓아내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탁월한 동체시력을 가진 그들로서는 이런 막대기를 피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사람이 1차 행동을 보인 그다음이다. 휘두른 막대기를 슬쩍 피한 동물 역시 자신을 위협했던 동물인 인간에게 역습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의 막대기 휘두들기는 너무나도 어설프기 짝이 없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써야만 한다. 동체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막대기를 마치 펜싱선수가 가는 검으로 상대방의 공격목표를 향해 찌르기 하듯, 막대기로 찌르는 행동을 재빠르게 할 경우, 대부분 동물들도 인간의 공격을 피하기 어렵고 물러나게 된다. 그것도 주로 코와 눈 주변을 목표로 할 경우 효과는 가장 크게 나타난다. 그 부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신경세포가 밀집해 있어 한 번의 타격만으로도 큰 충격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다녀오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보다 안전하게 귀가하는 일일 것이다. 차 안에 무임승차 한 파리를 바라볼 잠깐의 여유가 있다면 그들의 가진 뛰어난 동체시력을 내가 쥐고 이용할 방법도 배워보자. 세상은 약해서 지는 것이 아니라 지기 때문에 약한 것이다. 상대방을 보다 깊이 이해할 때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승리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다.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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