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몽고 침략에 맞서 강화로 도읍을 옮긴 후 1233년부터 129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과정에서 흙과 돌을 섞어 바닷길을 따라 길게 성곽을 쌓은 것이 축성의 시초다.
이후 조선 광해군 때 고쳐 쌓은 뒤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 설치됐다. 광성보 옆으로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돈대가 축조됐으며 영조 2년(1745) 다시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1871)의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재연 장군과 조선군 600명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한 미군 군함 2척의 함포사격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마지막 격전지가 이곳 광성보다.
1976년 다시 복원했으며 사적 제227호로 지정됐다. 2011년 명칭이 광성보에서 강화 광성보로 변경됐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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