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드라마를 통해 보는 가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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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소개하는 다섯 편의 영상물은 내가 최근에 본 것으로서 가족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해 준 영화와 다큐멘터리 드라마들이다.

 

1. 열두 살 소년 아키라는 엄마가 집을 나가 졸지에 자신과 동생 세 명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된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거나 엄마를 원망할 겨를이 없다. 유효기간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과 공원의 수돗물을 얻어 오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영화‘아무도 모른다’)

 

2. 세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신성혁씨(미국이름 : 아담 크랩서)는 양부모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성장했고 마흔 살이 될 때가지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추방될 기구한 운명에 놓였다. 신씨를 모국의 품으로 불러 새 삶의 기회를 준 사람은 바로 장애의 몸으로 생활고를 겪다 못해 그를 아동양육시설에 맡기고 떠나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40년의 긴 세월동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한시도 놓지 않고 살았다 (MBC 휴먼다큐 사랑 - ‘나의 이름은 신성혁’).

 

3. 일곱 명의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다큐멘터리가 TV를 통해 방영됐다. 한명은 다섯의 아이를 낳아 유기한 (사망한 아기도 있음) 모진 여성이었으며, 세 명은 아동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자녀를 입양 보냈다. 그러나 나머지 세 명은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고 당당히 엄마가 됐다. 22살 박은영(가명)씨는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간호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21살 최혜진(가명)씨는 아이를 버릴 유혹에 빠질 것 같아 오랫동안 품어 온 가수의 꿈도 접었다. (KBS 시사기획 창 -‘아가야 미안해’)

 

4. 후타바는 남편이 다른 여자사이에 낳은 딸 아즈미와 함께 산다. 하지만 말기 암으로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게 되어 딸의 양육을 위해 가출한 남편에게 돌아와 달라고 한다. 문제 많은 남편은 또 다른 딸 이유코를 데리고 온다. 그녀 자신도 친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상처가 있었고 삶을 마감할 처지에 있음에도 이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그동안 폐업했던 목욕탕 영업도 재개한다. 죽기 직전 그녀는, 큰 딸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님을 말해주고 친엄마와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는 친엄마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한다. (일본영화‘행복목욕탕’)

 

5.고등학교 교사 에마드는 자신의 아내를 성폭행한 병든 노인을 잡아 자신의 집에 감금한다. 그가 선택한 복수방법은 노인의 가족을 불러 죄상을 폭로해 망신시키는 것.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가족원 (아내, 사위, 딸) 모두는 에마드가 길 위에 쓰러진 노인을 데려다 보호해 준 줄 알고 감사인사를 수차례 반복한 후 노인을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애틋한 가족의 모습을 본 에마드는 그를 자기 방에 불러 뺨만 한 차례 때리고 돌려보낸다. (이란영화 ‘세일즈맨’2017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우리의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애절하면서도 강렬한 몸짓으로 보여 준 작은 영웅들이다. 이들처럼 ‘절실하게 지켜야 할 것’이 있는 한, 가족원의 의무인 사랑과 책임을 잃지 않는 한 가정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아가 드라마 제작자들이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일관된 메시지가 또 하나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가족의 형태와 생활 방식의 다양성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이다. 누구에게나 불행과 고통은 찾아오는 법이다. 절대선과 사랑의 하나님도 때로 착한 사람들을 암울한 그늘 속에 걷게 한다. 타인의 처지와 삶의 다양성을 그 자체로 인정해 주고 서로 공감하고 도우면서 새로운 관계가 맺어져 갈 때 ‘사회적 공명’도 더 다양하고 커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따뜻하고 진정한 복지국가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세정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경영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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