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기 번호 209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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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
“대기 번호 2097번, 이게 뭔지 아십니까? 외국인 근로자 채용 대기 번호입니다. 번호를 보니 이번에도 글렀습니다. 다음 분기에 다시 신청해봐야죠.”

 

수년째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대표가 대기표를 보여주며 한숨을 쉰다. 워크넷이나 벼룩시장과 같은 곳에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을 찾게 됐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에 신청하러 갔다가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에서 결국 번호표를 받고 돌아선 것이다.

 

동석했던 다른 기업 대표는 지역에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공장의 근무 환경을 대기업처럼 바꿀 여력도 안 되고, 각종 복지 제도도 따라 할 수 없으니 있는 직원들도 떠날까 봐 두렵다고 한다. 인건비 못지않게 복지 제도까지 꼼꼼히 비교하며 선택하는 구직자들 앞에서 중소기업 대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중소기업의 현장은 ‘일자리’가 뜨거운 감자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노력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은 일 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은 인력이 모자라고, 대기업은 넘쳐나는 현상만 잘 해결해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싶다. 일자리 창출에 대해 정부에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외국인 근로자 채용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한경쟁의 기업 환경에서 채용이 늦어지면 기회를 잃게 된다. 회사의 사활과 직결되는 채용 문제를 대기표를 나눠주는 원시적인 방법을 대체할 효과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청년실업 문제를 수당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면 한다. 최근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두 배가량 된다. 중소기업의 급여나 복리후생과 같은 고용 여건 개선에 도움을 주면 구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셋째, 중소기업 입사와 동시에 임대아파트 입주우선권을 부여했으면 한다. 현재 중소기업 근무 경력이 있어야 가능한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으면 한다. 의식주 중에서 청년들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주거 안정’을 꾀하면 취업 선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넷째, 중소기업은 정규직만 뽑는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는 ‘비정규직’ 문제가 중소기업에는 없다. 최근 경기도의회는 공공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산하기관의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 앞에 중소기업의 정규직 고용은 1천300만 도민에게도 큰 힘이 된다.

 

끝으로 우리 사회의 인식을 꾸준히 바꿔갔으면 한다. 며칠 전 유럽에 갔을 때, 직업의 귀천이 없는 사회라는 점이 매우 부러웠다. 우리 사회는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직장의 규모나 직업의 종류가 성공의 잣대가 되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사회 인식 개선 노력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과 현장의 어려움을 나누다 보니 정치적으로 지원해야 할 부분도 있고, 장기적으로 사회적 합의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도 있다. 어떤 문제든 해결하기 위한 결정은 늘 어렵고 힘들지만 이겨내고 잘 극복해 나갈 때 개인과 국가의 미래가 밝다고 믿는다. 일자리 문제 해결로 따뜻하고 희망찬 경기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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